[ESC] 커버스토리
‘ESC 공화국’ 대선후보 토론회 지상중계
나잘난 “국민은 젊게 살기 원해”
술김에 “택시·대리비 걱정 없게”
죽순돌 “또래 클럽문화 조성”
떡실신 “닥치고 떨어뜨리려 출마”
‘ESC 공화국’ 대선후보 토론회 지상중계
나잘난 “국민은 젊게 살기 원해”
술김에 “택시·대리비 걱정 없게”
죽순돌 “또래 클럽문화 조성”
떡실신 “닥치고 떨어뜨리려 출마”
재미와 웃음을 추구하는 ESC가 가상의 ‘ESC 공화국’을 그려봤다. 모두가 즐겁게 사는 나라에 관한 상상이다.
장미꽃이 만개하는 5월9일, ESC 공화국에서도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이번 ‘장미대선’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후보만 나잘난(꾸민당), 술김에(무소속), 죽순돌(즐긴당), 무작정(일탈당), 닥치고(먹고죽자당), 짓고땡(무소속), 떡실신(무소속) 등 7명에 이른다. 후보자들 각자 자신이 속한 정당의 정강·정책에 맞춰 공약을 내걸고 유권자인 국민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내건 공약들을 보고 있노라면 벌써부터 귀가 솔깃해진다.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후보자간 비방과 인신공격, 선심공약 경쟁 등 과열 양상도 감지된다. 어떤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적합할까. 제19대 ESC 공화국 대통령 후보 토론회를 지상중계한다.
사회자 안녕하세요? 세상을 놀자판으로 만들려는 열망으로 결단을 내려주신 후보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후보들의 투철한 사명감에 힘입어 ESC 공화국의 ‘밤’은 점점 더 아름다워지리라 확신합니다. 토론 시작하겠습니다. 죽순돌 후보님 모두발언 해주시죠.
죽순돌 클러버 박수홍이 욕먹는 세상, 말이 됩니까? 클럽은 범죄의 온상이 아닙니다. 국민이 즐기고, 사랑받는 장소여야 합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음주가무와 여흥은 최고의 미덕이었습니다. 이 조상들의 얼을 되살려 클럽 1천개소를 짓겠습니다. 10대, 20~30대, 40~50대, 60대 이상 등 연령별로 또래의 클럽문화를 누리도록 차별화하겠습니다. 전 국민의 클러버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나잘난 그걸 누가 원하죠? 지난 2월23일치 <한놀이신문>을 보면 국민의 절반 이상은 ‘젊게 살기’를 원합니다. 클럽을 원하는 이들은 10%도 채 안 됐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패션 기본소득’. ESC 공화국에서 시행 중인 ‘놀먹즐 기본소득’을 분리·확대하자는 겁니다. 옷·신발·액세서리·화장품 등의 구입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것입니다. 또 매달 두번씩 마사지 이용권을 제공해 힐링과 휴식의 기회를 넓히겠습니다.
죽순돌 패션 기본소득, 말은 좋은데 재원 조달 어떻게 하시려고요? 이것이야말로 보편적 복지 확대의 탈을 쓴 포퓰리즘입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손자들에게까지 의상구입비를 지원한다니 말이 됩니까? 이제 보니, 기호 2번 술김에 후보님의 공약도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네요. 개개인의 주량과 취향이 다른데, 쯧쯧…. 술김에 후보님이 주당이시라더니,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술김에 아니, 이 사람이? 당신 지금 나랑 해보자는 겁니까? 죽순돌 후보님이야말로 한때 ‘갑질 클러버’로 악명을 떨치지 않았습니까. 클럽에서 “라면 끓여와라”, “라면 안 익었다” 웨이터에게 행패 부린 것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데요. 세상 참 좋아졌습니다. 허허.
죽순돌 허~ 거참. 음. 음. 그것은 이미 피해자와 합의를 본 사건으로… 이번 토론회와는 무관한 내용입니다. 그러는 술김에 후보님은 자주 술에 취해 포크와 나이프를 바꿔서 든 적이 여러 차례 있잖아요?
술김에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가짜 뉴스입니다.
사회자 후보님들 인신공격을 자제해주세요. 무작정 후보님 모두발언을 이어서 들어보겠습니다.
무작정 전국의 버려진 섬을 레저·테마공원으로 조성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3천여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습니다. 440여개의 유인도를 제외한 무인도가 2700여개에 이릅니다. 이 섬들을 순차적으로 공원으로 만들어 국민의 레저기본권을 확실하게 높여드리겠습니다. 또 저 같은 ‘보통사람’이라도 1년에 한번씩 국외여행을 갈 수 있도록 매년 개인당 200만원을 지원하겠습니다.
닥치고 환경 파괴 문제는 검토하셨습니까? 4대강 악몽 잊으셨나요? 22조원을 투입했지만, 총체적 부실에다 ‘녹조라떼’라는 신조어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무작정 후보님, 이엠비 정권에서 국토교통부 장관 하신 이력 때문인지, 여전히 토건주의를 버리지 못하셨군요.
떡실신 사회자님, 의사진행 발언 있습니다.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군소후보라고 발언 기회도 안 주는 겁니까? 이쯤이면 막가자는 거지요?
사회자 아닙니다. 떡실신 후보님 말씀하십시오.
떡실신 닥치고 후보님께 묻겠습니다.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 그게 뭡니까, 유치하게. 전 국민을 비만환자로 만들려고 작정하셨군요. 아무리 놀이문화와 제도가 좋으면 뭐합니까?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즐길 수가 없는데. 저만 해도 체중 100㎏을 넘긴 뒤부터는 술만 먹으면 떡실신합니다. 대통령 출마를 결심하셨으면 제대로 공부하셨어야죠. 저는 기호 5번 닥치고 후보를 떨어뜨리려고 나왔습니다.
짓고땡 후보님들, 좀 들어보세요. 먹고 마시고 흔들면 뭐합니까? 게임이 빠졌는데. 기왕 놀려면 끝장을 보고 놀아야죠. 그래서 제 공약은 간단합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여기 계신 여러 후보님들과의 대연정을 추진하겠습니다. ‘사행성 게임 양성화’를 부르짖는 극우놀이당과 ‘보톡스·필러 무료 제공’을 내세운 극좌미용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과 후보에게 문호를 열겠습니다. 화합과 소통의 정치의 시작이며, 궁극적으로 국민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나잘난 저는 술김에 후보님께 묻겠습니다. <놀자문화신문> 1월5일치를 보면, 지난해 너무 마시고 놀아서 병원 신세를 진 국민이 4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술김에 후보님의 공약은 이런 현실을 고려한 겁니까?
술김에 기사를 제대로 읽어보셨나요? 그중에 입원이 필요한 수준은 미미했습니다. 갈비뼈 부러진 사람은 채 100명도 안 됐습니다. 놀다 보면 조금 다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잘난 후보님도 미니스커트에 하이힐 신고 넘어진 적 있으시죠? 그게 오로지 술 때문이었습니까?
나잘난 술김에 후보님의 발언은 명백한 성차별입니다. 여성으로서 제 사생활을 존중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사회자 후보님들 흥분하셨습니다. 과격한 발언은 자제해주십시오.
나잘난 무작정 후보님께 묻겠습니다. 섬 개발 과정에서 환경 파괴 논란에 대한 대안을 말씀해주세요.
무작정 4대강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환경을 파괴하지 않겠습니다. 맹세합니다.
닥치고 그걸 어떻게 믿어요? 우리나라의 놀이문화가 이엠비-박그네 정권 10년간 한없이 후퇴했습니다. 그 두 정권은 정말 ‘귀태’였어요. 지금 국민들의 삶은 지루하기 그지없습니다. 전임 정부 관료로서 먼저 반성하고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뻔뻔하시네요.
무작정 닥치고 후보님, 너나 잘~하세요. 오죽하면 떡실신 후보님이 당신 떨어뜨리려고 출마하셨겠습니까. 당신 공약부터 반성하고 사과하세요.
사회자 제발 후보님들 자제심을 잃지 말아주세요. 어느덧 예정된 시간이 다 지났습니다.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나잘난 인생은 오십부터라고 합니다. 100살까지 젊고 건강한 패셔니스타가 되고 싶다고요? 망설이지 말고, 저를 선택해주십시오.
술김에 늦은 밤 택시비와 대리비 요금이 부담스러우셨다고요? 제가 해결해드리겠습니다. 택시비·대리비 걱정 없는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짓고땡 화합과 통합의 놀이정치 원하시면 저, 짓고땡을 기억해주십시오.
사회자 발언권 더 필요하신 분 계신가요?
일 동 없습니다.
사회자 다음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에 대해 시청자 의견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몇 건 소개해드리고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를 마치겠습니다.
△과거의 놀이문화와 깔끔하게 단절하고, 새 틀을 짤 준비가 되어 있는 후보가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놀다가 다치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기 마련인데, 치료대책을 고민한 후보는 없는 것 같다. 건강도 챙겨주는 후보가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누가 당선되든 국민과의 약속인 공약을 끝까지 지켜줬으면 한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일 시: 2017년 3월22일 수요일 저녁 7시
장 소: 한놀이신문사 6층 회의실
참석자: 사회자(한놀이신문사 편집국장), 기호 1번 꾸민당 나잘난 후보, 기호 2번 무소속 술김에 후보, 기호 3번 즐긴당 죽순돌 후보, 기호 4번 일탈당 무작정 후보, 기호 5번 먹고죽자당 닥치고 후보, 기호 6번 무소속 짓고땡 후보, 기호 7번 무소속 떡실신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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