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쇼헤이(일본)가 22일(한국시각)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2023 세계야구클래식(WBC) 미국과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우승 트로피를 들고 좋아하고 있다. 마이애미/유에스에이투데이스포츠 연합뉴스
“그들을 그만 존경하자. 당신이 그들을 존경하면, 당신은 그들을 능가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을 뛰어넘기 위해, 정상에 오르기 위해 여기에 왔다. 하루만이라도 그들에 대한 동경심을 내려놓고 우승만 생각하자.”
오타니 쇼헤이(일본)가 22일(한국시각)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2023 세계야구클래식(WBC) 미국과 결승전을 앞두고 일본 대표팀 동료들에게 한 말이다.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미국 대표팀 연봉 총액은 3억7790만2500달러(4930억원). 야구 강대국 미국에 미리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맞설 것을 주문한 것이다. 일본 선수들은 끝까지 집중력을 보이면서 3-2로 승리, 7전 전승으로 2006년·2009년에 이어 14년 만에 세계 정상에 섰다.
9회초 2사 뒤 오타니가 엘에이(LA) 에인절스 팀 동료이기도 한 현역 최고 타자 마이크 트라우트를 시속 100마일(161㎞) 안팎의 강속구로 윽박지르다가 풀카운트에서 허를 찌르는 변화구(시속 140㎞)로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한 것은 대회 최고 명장면이 됐다. 트라우트는 경기 뒤 “그는 끔찍한 공을 갖고 있고, 마지막에 나에게 좋은 공을 던졌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오타니는 대회 내내 투타에서 일본 대표팀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4강 멕시코전서 4-5로 뒤지던 9회말 선두타자로 나와 2루타를 치고 출루한 뒤에는 격한 감정을 드러내며 동료들의 투지를 끌어내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서 오타니는 ‘투수’로는 3경기에 등판해 2승1세이브, 평균자책점 1.86(9⅔이닝 5피안타 11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고, ‘타자’로는 7경기 타율 0.435(23타수 10안타), 1홈런 8타점 9득점의 성적을 냈다. 결승전 때는 6회 이후 더그아웃과 불펜을 오가면서 투수, 타자를 동시에 준비하기도 했다. 당연히 대회 최우수선수(MVP)는 오타니의 몫이었다. 그는 투타에서 모두 올스타에 뽑히기도 했다.
오타니는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9회 등판했을 때) 긴장은 했지만, 다행히 실점 없이 경기를 마쳤다.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트라우트를 상대해서 다행이었다”면서 “그를 아웃 처리하든 안타를 맞든 후회 없는 공을 던지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더불어 “일본 대표 선수들과 함께해 즐거웠다. 한국, 대만, 중국 등 아시아, 전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야구가 더 사랑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WBC를 치르면서 오타니의 인기는 치솟아 그의 개인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400만명을 넘어섰다.
전 메이저리거이자 〈폭스 스포츠〉 애널리스트인 존 스몰츠는 일본-멕시코 전을 중계하면서 “오타니는 타격 연습을 하면서 상대 투수를 연구해야 하고, 동시에 불펜 투구를 하면서 6일에 한 번 선발로 나설 준비를 한다. 투수, 타자를 동시에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다른 빅리거들은 잘 알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두 포지션을 소화하느라 밤낮없이 야구 연습에만 몰두하는 오타니에 경의를 표한 것이다.
오타니 쇼헤이(일본)가 22일(한국시각)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2023 세계야구클래식(WBC) 미국과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팀 동료들과 좋아하고 있다. 마이애미/EPA 연합뉴스
마크 데로사 미국 대표팀 감독은 “오타니가 지금 하고 있는 것(투타 겸업)은 빅리그 선수들 90% 정도가 리틀리그나 아마추어 때 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제일 큰 무대에서 그것을 해냈다”면서 “오타니는 스포츠 분야의 유니콘이다. 다른 선수도 투타 겸업을 시도할 것 같지만 오타니 만큼의 레벨에는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 대표팀에서 함께 뛴 라스 눗바는 오타니에 대해 “
그는 세계 최고의 야구 선수일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선수일 수도 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운동선수일지 모른다”라고 극찬했다.
틈틈이 야구장 쓰레기를 줍는 등 그에 대한 미담은 끊이지 않는다. 오타니는 이번 대회에서 대단한 야구 열정을 보여준 체코 대표팀을 향해 인스타그램을 통해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 마이애미에 입국할 때 체코 대표팀 모자를 쓰기도 했다. 〈폭스 스포츠〉는 “오타니를 오랫동안 알았거나 한 번밖에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은 똑같이 그의 캐릭터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는 슈퍼스타지만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한다”고 했다.
오타니는 투타겸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치고 던지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야구다. 한 가지만 하고 다른 하나를 하지 않는 것은 나에게 부자연스럽다. 다른 이들이 하지 않는 것(투타 겸업)을 하는 것이 재주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나에게는 그냥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치고, 달리고, 던지고 쓰레기까지 줍느라 지구상에서 가장 바쁜 야구 선수 오타니. 생애 처음 참가한 WBC에서
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결말을 만들어내며 또 하나의 전설을 썼다. 쇼헤이의 ‘쇼타임’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