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애(23·세계투어).
[36.5℃ 데이트] 5년만에 KLPGA 첫승 함영애
중압감에 승리 놓친 기억…편안한 플레이 ‘깜짝선물’
“서희경 언니가 롤모델…선의의 경쟁 일깨워줘”
중압감에 승리 놓친 기억…편안한 플레이 ‘깜짝선물’
“서희경 언니가 롤모델…선의의 경쟁 일깨워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데뷔한 지 벌써 5년째. 지지난주까지 그가 투어에서 거둔 최고 성적은 2008년 에쓰오일 챔피언스 인비테이셔널에서의 6위였다. “우리 딸, 그동안 마음고생 참 많이 했어요. 실력은 좋은데, 대회만 나가면 잘 안되는 거예요. 그만두라고도 여러 번 얘기했어요. 그런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연습을 하더니, 결국 해내더군요.” 어머니는 둘째딸의 생애 첫 우승을 너무 대견스러워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울산에서 한우집과 국밥집을 운영하며 뒷바라지해온 아버지는 26일 고객들에게 공짜로 한턱 크게 썼다. 음식점엔 딸의 우승을 축하해주는 펼침막도 내걸렸다. 소 한 마리도 잡아 주변 사람들에게 보답할 예정이다.
5년 무명 함영애(23·세계투어). 그가 22일 ‘넵스 마스터피스’ 4라운드에서 국내 최강 서희경, 시즌 2승의 안신애와 챔피언조에서 맞붙어 데뷔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5번 홀(파3·135야드)에서는 완벽한 샷으로 홀인원까지 기록하며 10여년 남짓의 골퍼생활에서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27일 경기도 포천 일동레이크골프클럽에서 시작되는 ‘엘아이지(LIG) 클래식’ 출전을 위해 다시 샷을 가다듬고 있는 그를 전날 인근 베어스타운 골프연습장에서 만났다. “어제 프로암대회 했는데, 사람들이 곧바로 저를 알아보고 ‘함 프로 우승 축하한다’고들 그러더라고요. 사람들의 시각도 달라졌어요. 그전에는 그냥 한 명의 프로에 불과했는데….”
그는 요즘 “우승턱을 내느라고 주변 동료들과 밥먹기 바쁘다”고 했다. 오랜 마음고생도 다 털어냈단다. “우승하고 하니까 바로 내일이 시합인데, 즐겁고 편안해요. 그동안은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참 많았는데….” 그에게 우승은 너무 느닷없이 다가왔다. “운도 따르고, 공을 똑바로 치고 그림 같은 샷을 해야 우승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골프가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 있더라고요.”
서희경과 안신애 틈바구니에서 차지한 우승이기에 ‘강심장’ 아니냐고 물었다. “둘이 우승 많이 했잖아요. 뒷조에는 요즘 잘나가는 조윤지와 유소연이 있고. 부담이 커서 제가 우승한다는 생각 안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냥 우승하는 법만 배워야겠다고 하고 편안하게 쳤는데….” 이전에도 두 차례 챔피언조에서 경기했으나 쓰라린 패배를 당한 경험도 있다. “그땐 우승하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무너졌던 것 같아요. 챔피언조 자체만으로도 심한 중압감을 느꼈던 거죠.”
직업으로서의 골프는 그에게 적지 않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선수들 모두 연습하는 시간이나 열정 등은 다 비슷한데, 결과는 다 다르게 나오잖아요. 그것 때문에 선수들 스트레스 많아요. 골프는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힘든 운동이에요. 직업으로 1년 내내 하려면 힘들어요. 재미로만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죠.”
함영애는 울산 아가씨다. 투어에서 뛰는 울산 출신은 그와 1년 후배인 이현주 둘뿐이다. 원래 운동을 좋아해 울산 삼호초등학교 때 태권도와 육상을 했으나, ‘너무 와일드한 운동’이라며 부모가 만류해 결국 골프채를 잡게 됐다. 주니어 시절 울산에서는 거의 우승을 휩쓸었고, 울산 서여중 3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되기도 한 유망주였다.
그는 “이것 하나만은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장기를 생각하기보다는 모든 샷을 골고루 밸런스 있게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골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을 아는 것이 아닌가 해요.”
함영애의 ‘롤모델’은 원래 “카리스마와 승부욕이 강한 박지은과 크리스티 커”였다. 하지만 올 초 선배 서희경과 하와이 전지훈련을 함께 다녀온 뒤로는 그로 바뀌었다고 한다. “연습 때의 자세, 라운딩 때의 마음가짐, 미스샷 때의 행동, 숙소생활 하나하나가 참 배울 게 많았어요. 지난주 경기 때도 언니가 라운딩 도중 많이 응원해줘서 선의의 경쟁이 뭔지 알게 됐어요.”
장기적 목표는? “한국에서 꼭 한번 우승해보고 미국 가겠다고 생각했어요. 국내 무대 승수 쌓는 것이 당분간 중요하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미국여자프로골프 투어에서 우승하는 게 최종 목표예요.”
포천/글·사진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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