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
박광호 한국농구연맹(KBL) 경기위원장은 구슬 10개가 담긴 추첨기계를 조심스럽게 돌렸다. 가장 먼저 전자랜드 갈색 구슬이 ‘또로록’ 하고 떨어졌다. 순간 이민우 코치가 만세를 불렀다. 전자랜드가 외국인선수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얻은 것이다. 아침부터 “기를 모은다”며 말수를 줄인 전자랜드 양원준 사무국장도 비로소 빙그레 웃었다. 양 국장은 “만지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후버댐에 있는 공사 인부 위령동상의 발 끝이 마르고 닳도록 만지고 왔다”고 털어놨다. 최희암 감독도 그제서야 뱀꿈 이야기를 꺼냈다.
전자랜드는 10개 팀 중 회의시간이 가장 길었다. 그날 찍은 비디오를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드래프트 전날엔 새벽 3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전자랜드의 최근 세 시즌 성적은 10위-10위-9위. ‘전력의 절반’이라는 외국인선수 지명을 앞두고 그 어느 팀보다 소망이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전주 KCC 허재 감독은 머리카락이 부쩍 빠지고 옆머리도 하얗게 변했다. 지난 시즌 꼴찌로 마음 고생한 흔적이다. 그는 슬롯머신이나 카지노를 즐겨한다. 그런데 드래프트 장소가 ‘도박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인데도 카지노장에서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돈이 없어서…”라며 웃었지만, ‘대사’를 앞둔 간절한 심정이 담겨 있었다. KCC 분홍색 구슬은 3번째로 바닥까지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많은 팀들이 탐냈던 브랜든 크럼프를 품에 안았다. 2라운드에선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공항까지 갔다 온 제이슨 로빈슨을 극적으로 뽑았다. 허 감독은 “마이크 앞에서 대신 뽑을 두 선수를 놓고 망설이던 순간 로빈슨이 들어왔다”고 털어놨다.
SK 하얀색 구슬은 8번째서야 유리관 밖으로 나왔다. 지난 시즌 하위팀(8~10위)이 모두 1~3순위 행운을 잡았지만, 7위 SK는 그런 행운마저도 없었다. SK는 2001~2002 시즌 준우승 이후 5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팀. 그런데 앞 팀들은 이상하게도 김진 감독이 ‘찜’한 선수를 비껴갔다. 김 감독은 래리 스미스를 지명한 뒤 “앞에서 먼저 뽑을 선수로 봤는데…”라며 만족해했다. 지난 시즌 감독대행으로 무던히 속을 태웠던 강양택 코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꼴찌 팀들의 행운으로 시작된 2007~2008 시즌이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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