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
여자프로농구 안산 신한은행 감독 공모에 수십명이 몰렸다고 한다. 여자프로팀 전직 감독, 대학팀 현직 감독, 텔레비전 해설가, 심지어 남자프로농구 감독 출신까지도 끼어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농구담당 기자 셋이 모여 입씨름을 벌였다. 유치하게도 주제는 하마평에 오른 이들 중 ‘누가 더 불쌍한가’ 였다. 어느 기자가 ㄱ씨를 거론했다. “지방 대학에서 7년째 ‘유배’ 중이지 않느냐. 2부팀을 1부로 끌어올린 지도력도 있는데, 번번이 프로팀 감독 물망에 올랐다가 탈락하고 있다”며 동정론을 폈다. 다른 기자가 맞받았다. “그렇게 따지면 ㄴ씨를 더 동정해야 한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면서도 지금껏 야인생활만 하고 있지 않느냐. 더욱이 최근엔 프로팀 코치로 결정됐다가 막판에 탈락하는 등 너무 운이 없다”고 두둔했다. 또 다른 기자는 ㄷ씨 얘기를 꺼냈다. “그 역시 여자프로농구 명감독 출신이지만 다시 프로팀 지휘봉을 잡는 데 실패하면서 무던히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감쌌다. ㄱ씨는 임달식 조선대 감독, ㄴ씨는 김유택 〈엑스포츠〉 해설위원, ㄷ씨는 정태균 전 국민은행 감독이다. 사실 이들 말고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마음고생하지 않은 이가 어디 있으랴.
프로농구 선수가 은퇴한 뒤 초등학교 코치 자리라도 차고 들어가려면 경쟁률이 50대1이라는 소리가 나돈다. 하물며 프로농구팀 감독 자리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다. 지도자들의 야인 생활은 도 닦는 수도승같다. 마음고생이 심하면 심할수록 도의 깊이는 더욱 깊어지는 듯 싶다. 이충희 대구 오리온스 감독은 2000년 엘지(LG) 감독에서 물러난 뒤 프로팀에 재입성하는 데 무려 7년이나 걸렸다. 마음고생이야 어디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요즘 그를 보면 한결 차분하고 겸손해진 느낌이다. 마치 속세를 초월한 수도승처럼.
정상에서 스스로 물러난 이도 마찬가지다. 박종천 인천 전자랜드 코치나 이영주 전 신한은행 감독이 이런 경우다. 이들 역시 인고의 세월을 보냈거나 보내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신한은행 감독으로 선임된 이는 도 닦고 하산하는 기분일 것이다. 반면, 탈락하는 이는 쓰린 가슴을 부여안고 더욱 더 마음을 다스릴 것이다. 지도자라는 자리가 종교인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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