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매개치료에 나선 까꿍이가 보호자 유가영 동물매개치료상담사와 임아무개(군)과 함께 하고 있다.
4살인 수컷 치와와 믹스견 ‘까꿍이’는 21일 오후 인천광역시 계양구 장애인거주시설 ‘예원’ 2층 교실 책상 위에 올라가 있었다. 까꿍이의 보호자이자 반려동물매개심리상담사인 유가영(25)씨가 깔아준 회색 방석 위에 가만히 앉아있던 까꿍이는 앞다리를 모아 엎드렸다. 이내 눈을 감기도 했고 다시 몸을 일으켜 허공을 바라봤다. 다른 책상에 있는 개에게 다가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임아무개(15)군은 까꿍이가 앉아있는 책상에서 동물 발바닥 모양의 갈색 부직포를 가위로 자르고 있었다. 다 자른 임군이 다섯 손가락을 쫙 펼치며 말했다. “까꿍이 발. 내 손이랑 닮았어요. (까꿍이) 다 좋아요. 다.”
이날은 개와 사람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알아보고 각자 개로 변신해보기로 했다. 교실에는 8명의 장애인과 그보다 많은 수의 강사들이 있었다. 모두 5마리의 개가 있었는데 강사들이 반려견들의 보호자였다. 이 시설에서 3년 넘게 동물매개치료를 해 온 한국반려동물매개치료협회 강사 진미령(36)씨가 교실 가운데 서서 책상 위 방석에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개들의 이름을 부르며 신체의 특징을 설명했다.
“강아지 발바닥을 보세요. 발바닥이 푹신푹신한 건 강아지 발을 보호하기 위한 거예요.”
진씨의 말에 유씨가 엎드려 있는 까꿍이의 발바닥을 가리켰다. 임군이 까꿍이의 발바닥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봐도 까꿍이의 자세는 변하지 않았다. 임군이 부직포 장갑을 끼고 까꿍이 귀를 붙인 머리띠를 써보는 것으로 수업은 마무리됐다. 임군은 헤어지기 전 까꿍이에게 간식을 줬다.
유씨는 “교실 소음이 조금 걱정되지만 간식 먹는 걸 워낙 좋아하니 데려온다”라고 말했다. 유기견보호센터에 있다가 2년 전 유씨를 만난 까꿍이의 수업 시간도 1시간 만에 그렇게 끝났다.
동물매개치료에서 동물이 하는 일은 생각보다 적었다. 존재만으로도 다른 생명을 느끼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
동물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동물매개치료는 좋지 않다고 한다. 계속 동물을 만지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의미가 없다.
임군을 포함한 11명의 지적장애인은 2015년 8월부터 지난 7월까지 3년 동안 일주일에 1시간씩 개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동물매개치료 수업을 받은 것이다. 이날처럼 개에 대해 배우고 관련한 그림을 그리거나 개집을 만들었다. 간식을 만들어 나누고 함께 산책하러 나갔다. 개들을 만나면서 이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시설에서는 1년마다 변화를 기록해왔다. 평가 항목은 협력·자기주장·자기통제 같은 사회적 기술, 자존감, 의사소통능력, 자기 결정력(자립능력) 등 네 가지로 나누었다. 지적장애가 심하지 않은 소수의 대상자를 제외하고 사회복지사나 담당 동물매개상담심리사가 설문에 답했다. 관련 문항마다 1~5점의 배점을 두어 점수의 변화를 따져봤다.
평가해보니 대상자들은 모든 영역에서 10~20%씩 점수가 올랐다. 임군도 3년 동안 많이 성장했다. 사회적 기술 영역을 보면 ‘친구와 협력한다’, ‘적당한 때에 자신의 장점을 말한다’, ‘도움을 기다리는 동안 적절하게 시간을 활용한다’, ‘스스로 방과 소지품을 정돈한다’ 등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예원의 이상근 사회복지사는 “공격적이어서 상대방을 때리거나 자해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동물매개치료 후) 3년 동안 임군도 많이 밝아졌다”고 말했다.
임군은 자존감 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문항에서도 점수를 땄다. ‘여러 사람과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의사소통능력도 세밀해졌다고 한다. 이전에는 상대방이 말할 때 끼어들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면, 이제 상대방의 말을 들은 뒤 말하려고 노력하는 쪽으로 달라졌다. 자립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자기 결정력도 긍정적으로 변했다. 이전에는 자유시간 동안 할 일을 못 찾고 수동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점점 자신이 원하는 활동이 무엇인지 담당자에게 질문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 사회복지사는 “(이들은) 가족들과의 만남이 적다. 외출해도 외부인과의 접촉이 거의 없다. 사람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를 수 있는데 개랑 놀면서 편안하게 대화하는 것을 배우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수업을 참관해 보니 개들은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다. 단지 한 공간에 머물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 주는 것만으로도, 지적장애인들은 다른 생명을 배려하는 법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또 개가 교실에 등장하는 순간 분위기가 밝아지고 강사와 장애인들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 아닌 다른 생명을 보면서 타인에 대한 개념이 생기고,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한 공간에 있다 보면 개를 배려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돼요.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람에게도 향하게 하는 게 치료의 최종 목표입니다.”
자신의 반려견 달이(2살·수컷 말티즈)와 함께 한 한국반려동물매개치료협회 강사 박영선(24)씨가 말했다. 박씨가 생각하는 동물매개치료는 동물과 함께 하면서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기쁨과 맞닿아 있었다.
이날 수업에선 개의 발바닥을 만들어보고 개와 사람의 다른 점에 대해 공부했다.
선한 취지이지만 동물을 괴롭히는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민간 자격증 취득을 미끼로 상업적으로 동물매개치료를 이용하는 업자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김복택 한국반려동물매개치료협회 회장이자 호서직업전문학교 애완동물관리전공 교수는 “품종견만으로 동물매개치료를 하는 곳, 현장 경험없이 온라인 교육만으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곳 등 잘못된 곳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몇 가지 주의사항을 당부했다.
동물매개치료라고 개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면 부작용이 난다. 개에게 지나친 복종훈련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교육적이다. 또 사람들이 동물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미리 알리고 막아야 한다. 생명 감수성을 통해 사회성을 익히는 시간인 만큼 자신의 시간과 몸을 내어주는 고마운 동물을 괴롭히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글·사진/인천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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