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재발방지와 역무원 인력 충원 등 근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회원들. 연합뉴스
서울 지하철 신당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업무 현장에서 직원 사이에 스토킹·살인 범죄가 벌어졌지만 서울교통공사(이하 ‘공사’)는 한 달째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2인 1조 순찰 체계 도입을 위한 인력 충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공사는 재정난을 이유로 다른 방안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환 서울교통공사 홍보실장은 13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공사는 재정 여건상 인력을 충원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야간 등 취약 시간대에 발생할 수 있는 난폭한 상황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지하철 보안관이나 사회복무요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논의하고 있다. 지하철 보안관을 충원하고 병무청과 협의해 사회복무요원을 늘리는 방안을 포함해 여러 인력 운용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세부적으로 논의할 사항이 많아 발표가 늦어지고 있지만 이달 중에는 대책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2일 오세훈 서울시장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사회복무요원이나 지하철 보안관을 활용해 2인 1조 순찰을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건 발생 이후 서울교통공사는 단발적인 대책들을 내놨다. 가해자가 불법 촬영·스토킹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직위 해제된 상태에서도 공사 내부망을 통해 피해자 근무 정보 등을 알아낸 사실이 알려지자, 사건 6일 뒤인 지난달 20일 직위해제자 내부망 접속 차단 조처를 했다.
같은 날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대표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여직원 당직 폐지 또는 축소’, ‘폐회로텔레비전(CCTV) 활용 가상순찰 개념 도입’, ‘호신 장비 보급’ 등을 대책으로 내놨다. ‘여직원 당직 축소’ 발언은 성차별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7~12일엔 영업본부 전 직원을 상대로 안전 보호 장비 선호도 조사를 했다. 공사는 페퍼 스프레이, 전기충격기, 삼단봉, 방범복, 방범 장갑, 호루라기, 호신용 경보기 등을 역무원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서울에서 지하철 역무원으로 일하는 한 직원은 “직원이 직원을 살해한 스토킹 범죄 사건이 발생했는데 회사가 한 달째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 놀라울 뿐”이라며 “보호 장비 제공은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직원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사는 2인 1조 순회를 위한 인력 충원 계획과 함께 직장 내 성폭력 근절 대책을 함께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에 따르면, 지하철 1~8호선 265개 역사에서 1개 조에 2명만 일하는 ‘2인 근무반’은 1060개 반 중 413개로 38.7%에 달한다. 10개 조 중 4개 조 꼴로 혼자 순찰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2인 근무 반은 1명이 역사에서 각종 민원 접수 업무를 보는 동안 나머지 1명이 순찰(순회) 업무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전한 업무 환경을 위한 인력 충원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공사의 경영 기조는 인력 충원과 거리가 멀다. 지난해 6월 공사는 임단협에서 ‘근무제도 개선 및 업무 효율화’, ‘비핵심 업무 위탁’ 등을 통해 현재 직원 1만6247명(지난 6월 말 기준)의 10%에 가까운 총 1539명 인력 감축안을 내놨다. 이에 노조가 파업을 예고하며 반대하자 ‘‘재정위기를 이유로 강제적 구조조정이 없도록 한다’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여전히 ‘인력의 효율적인 운용을 통한 재정 정상화’라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 코로나19 이후 서울교통공사 적자 폭은 급격히 늘었다. 2019년 당기순손실 5865억원에서 2020년 1조1137억원, 2021년 9644억원으로 두배 안팎 급증했다.
김정섭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 교육선전실장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운수 수입이 줄어 발생한 적자를 인력 감축 등의 구조조정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옳지 않다”며 “공사와 서울시, 중앙정부가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비용을 더 부담해서 인력 충원을 통한 2인 1조 순찰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호 서울시 도시교통실장은 “공사와 이번 사건 대책 협의를 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한 별도의 추가 재정 지원 방안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이미 재정난이 심한 공사에 올해 처음으로 예산 3500억원을 지원했고 내년도 예산에도 2천억원을 편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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