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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20대 직장여성의 ‘로망’ 건드린 센스

등록 2006-07-20 19:54수정 2006-07-21 16:24

베스트셀러 들여다보기/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올 상반기 내내 국내 작가는 공지영, 외국 작가는 댄 브라운과 코엘류가 휩쓸어온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위가 최근 정말 오래간만에 바뀌었다. 로렌 와이스버거란 스물아홉살 미국 처녀의 데뷔작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전 2권·각권 8500원·문학동네 펴냄)가 차지한 것이다. 특히 외국소설의 경우 이미 오래 전에 나온 책들이 장기집권하는 상황이 계속되어왔기 때문에 최근 나온 책이 1위에 오른 것도 오랫만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지난 5월12일 출간된 지 두달여 만에 5만질, 10만부가 팔렸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줄거리는 간단하고, 전형적이다. 한 젊은 여성이 마음속으로는 더 그럴 듯한 잡지사에서 그럴 듯한 일을 하고 싶지만 일단 거쳐가는 과정 삼아 패션잡지사에 입사한다. 맡은 일은 패션계의 거물로 성공한 편집장의 비서 역할. 편집장은 ‘악마’로 불릴 정도로 지독해서 주인공을 항상 들볶는다. 주인공은 애초 겉만 화려하고 요지경속 같은 패션계를 냉소했지만 어느새 자기 자신도 조금씩 즐기게 된다. 그러면서도 이 분야가 과연 평생 몸담을 곳인지 갈등하고 고민하다가 결국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난다는 이야기다.

이 책은 출간 결정과 동시에 베스트셀러를 예약했놓았던 것이나 다름없었고, 앞으로도 잘 팔릴 것 역시 거의 확실하다. 이 책은 지은이가 실제로 세계 패션잡지 가운데 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미국 잡지 <보그>에서 편집장 비서역을 했기 때문에 2003년 출간 당시 미국에서 크게 화제를 모았고, 그 덕분에 <다빈치 코드>가 나오기 전까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책이다. 이런 후광을 그대로 업고 국내에 들어온데다, 책이 영화화되는 행운도 더해졌다.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가 나오는 같은 이름의 영화가 하반기 국내에서 개봉되면 다시 한번 판매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여성이라면 모를 리 없는 명품 브랜드 ‘프라다’가 등장하는 제목은 단연 이 책 최고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미국판보다도 더욱 눈길을 잡아끄는 강렬한 표지 디자인도 서점에서 여성 독자들을 사로잡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모든 면에서 베스트셀러가 안되면 이상할 정도다.

하지만 이 책이 출판시장에서 갖는 의미와 상징성을 상업적 성공보다도 현재 20대 여성들 사이의 유행과 취향을 반영한다는 면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 <악마는~>은 현재 출판시장에서 흐름을 이루고 있는 20대 여성을 위한 현실적이고 노골적인 책들과 맥을 같이한다. 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로 상징되는 요즘 여성들의 환상과 허영을 충족시키는 대표적인 문화상품인 것이다. 뉴욕이란 도시가 주는 환상, 값비싼 명품 브랜드의 세계, 패션업계란 무언가 다를 것 같은 기대속에 전문직의 세계를 엿보는 재미, 직장생활의 애환 등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원하고 또 실제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일 것이다. 이 책에는 젊은 여성들의 취향에 맞는 온갖 명품들의 이름은 물론 실제 인기상품들의 이름이 그대로 등장한다. 내용면에서도 젊은 여성이 직장에 처음 들어가 겪게 되는 상황들과 어려움들을 담고 있다. 그야말로 ‘오로지 젊은 여성들만을 위한’ 책이고, 이는 판매에서도 그래도 입증됐다.

독자들의 평가가 실로 극과 극을 달리는 점도 이 책의 특성이다. 호평은 예외없이 상쾌하고 발랄한 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반면 부정적 반응은 그 강도가 다른 책들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강하다. ‘재미가 없다’. ’취향에 안맞는다’는 정도가 아니라 ‘짜증이 난다’, ‘화가 난다’는 식의 강한 거부반응이 많다. 독자의 나이가 많거나 직장생활 경험이 많을수록 별 재미가 없다는 비율이 높은 반면 나이가 어릴수록 좋다는 평가가 많은 점도 두드러진다. 평가야 어떻든 이 책이 현재 20대 사회초년병 연조의 여성들이 갖는 ‘로망’을 건드리고 있다는 점, 가장 폼나게 사는 젊은 여성들의 모습을 제시해 대리만족을 주는 점 만큼은 분명해보인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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