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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놀이 삼아 책 보는 CEO 휴가위해 일하는 직원들

등록 2007-01-18 16:19수정 2007-01-18 16:37

이메이션코리아 이장우 대표는 트렌드를 읽는데 열심이다. 해외출장을 갈 때마다 현지 책방에서 최신간 사냥을 한다. 방콕, 샌프란시스코, 타이베이, 홍콩, 뉴욕 등에는 단골책방을 두고 있을 정도다. 그렇게 사들인 책들은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때로는 서평으로, 때로는 나눔행사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그 내용을 공유한다. 근무중 편히 쉴 수 있도록 마련한 ‘창의실’에서 직원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공유의 한 방법이다. 왼쪽에 선 이가 이 대표.
이메이션코리아 이장우 대표는 트렌드를 읽는데 열심이다. 해외출장을 갈 때마다 현지 책방에서 최신간 사냥을 한다. 방콕, 샌프란시스코, 타이베이, 홍콩, 뉴욕 등에는 단골책방을 두고 있을 정도다. 그렇게 사들인 책들은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때로는 서평으로, 때로는 나눔행사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그 내용을 공유한다. 근무중 편히 쉴 수 있도록 마련한 ‘창의실’에서 직원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공유의 한 방법이다. 왼쪽에 선 이가 이 대표.
“일에 치이면 창의력 안 나와” 우선순위가 ‘놀기’
관심분야는 10권, 더 필요하면 50권·100권 독파
“책 맘껏 사보라” 직원 책값 대주고 칼퇴근 시켜
스스로 일하도록 ‘인센티브 해외여행’ 보상
한국의 책쟁이들 / (17) ‘독서경영’ 이장우 이메이션코리아 대표

지난 수요일(17일) 직원의 반 12명이 4박6일 예정으로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로 떠났다. 발리(2000년), 앙코르와트와 베트남(2002년), 뉴질랜드(2003년), 인도와 스리랑카(2004년)에 이어 다섯번째 여행이다. 회사가 정한 목표를 달성했을 때 주어지는 인센티브 트립. 비용은 전부 회사부담이다. 창립 11년째니 한해 걸러 혜택이다.

이메이션코리아. 시디, 디브이디, 유에스비, 디스켓, 광마우스, 데이터카트리지 등 컴퓨터 관련 제품을 개발판매하는, 매출 208억원(순이익 12억원), 임직원 25명의 아담 사이즈다. 1996년 3M에서 분리독립한 이 회사는 1998년 외환위기 때 급속한 영업악화와 함께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Y2K 등 기회요소를 고려한 100억 투입 결정으로 1999년 147억원, 2000년 160억, 2001년 200억원, 2002년 212억원, 2003년 231억원, 2004년 261억, 2005년 203억 등 성장세를 타며, 전세계 이메이션 법인 중 성장률 1위의 길을 달렸다. 유에스비, 광마우스, 키보드는 이메이션코리아에서 처음으로 런칭시킨 제품이다. 이 가운데 유에스비는 글로벌 전략상품으로 결정돼 2010년 1조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처럼 작고 단단한 기업의 선두에는 역시 작고 단단한 대표이사 이장우(51)씨가 우뚝 서있다. 경영학, 공연예술학 박사학위 둘, <미래경영, 미래 시이오> 등 지은책 4권, 이화여대 겸임교수, 한국복지재단 후원대사 등 하루를 36시간으로 쪼개어 사는 인물이다. 올해부터는 이메이션 아시아태평양 소비자부문 부회장을 겸임해 180일 이상을 해외출장으로 보내야 한다. 실제 체험에 바탕을 둔 그의 마케팅 강의는 시이오 사이에 명강의로 소문나 최고 300만원을 주어야 한다.

사무실 천장 한 가운데 ‘GROW, DEFEND, LAUNCH’라는 올해의 슬로건이 걸렸고 남쪽 끝 대표이사실은 유리칸막이로 투명하다. 책상에는 경영전략 관련 영어권 도서 10여권. 올해의 전략을 짜기 위한 참고서다.

CEO·유명 강사·책 저자·겸임교수…

“일에 치여 살면 창의력은 절대 안 나옵니다. 영화도 보고, 뮤지컬도 보고, 책방거리를 걸어도 보고, 게으른 휴가도 다녀오고…. 아이디어는 밖에서 나오는 겁니다.”

피디에이로 관리하는 그의 일정에서 우선순위는 ‘놀기’다. 중요한 것과 급한 것 가운데 중요한 것을 먼저 하라는 원칙에 따른 재충전과 감각 벼리기다. 와이셔츠 주머니에는 포스트잇을 항상 넣고 다닌다. 떠오르는 생각을 언제든 메모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름지기 일은 즐겁게 해야 한다는 지론. 휴가나 여행, 영화관람 등을 상상하면 일이 즐거워지지 않는가. 대학졸업 직후 서너 달 동안의 백수시절. 연탄불을 못넣은 냉골에서 새우잠을 자고 앞집 연탄불 갈아주며 라면을 끓여먹었지만 몇년 뒤 미래상을 그리며 어려움을 견디던 마음가짐이 지금의 바탕이 되었다.


그는 직원들 경조사를 챙길 만큼 부지런하지 않고, 부하직원 출퇴근·휴가, 차량 운행기록부를 따질 만큼 꼼꼼하지도 않다. 그런 것은 머리없고 부지런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다. 이제는 포지션파워가 지배하던 세상은 가고 소프트파워의 시대가 왔다. 그의 경영방침은 ‘다른 사람을 통해 일을 하라’. 커다란 전략과 방향을 설정하고 모든 직원을 그것에 줄 세우는 일이 그의 몫이다. 그러려면 스스로 실력을 길러 세상을 보는 안목을 갖춰야 한다.

그가 한해 읽어내는 책은 줄잡아 100여권. 숙독한 것이 그 정도이고 뽑아읽는 것을 합치면 수백권이다. 책장에서 꺼내 보여준 ‘읽은 책’은 밑줄과 괄호로 중요한 부분이 표시돼 있고 중간중간 메모가 돼 있다. 읽고 난 뒤의 생각을 속표지에 가득히 써놓은 것도 있었다. 그는 아침에 잡은 책은 저녁에 끝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리고 여행이나 휴가를 이용해 책을 몰아읽는 편이다. 예술, 문화, 여행 등 즐기는 분야는 씹어가며 읽고 개중에는 읽기가 아까워 책장에 꽂아둔 채 ‘기다리는 즐거움’을 한껏 누리기도 한다.

“책은 선택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요. 필요한 분야, 최고의 책을, 적절한 시간에 읽을 수 있지요.” 관심분야가 생기면 아시로 10여권을 선정해 읽는다. 더 필요하다 싶으면 50권을 읽고 속도가 붙으면 100권 독파는 금방이다. 그렇게 해서 질문이 가능해지면 그 분야 최고수를 찾아다니며 배운다. 새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미 상당히 연구돼 있거나 자신이 별 것 아님을 알게 된다. 전문가가 되려면 그 분야의 책 1000권은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책에서 책으로 연결되는 하이퍼텍스트식 기법이 한단계 업그레이드되면 시멘틱 웹 방식이 된다. 예컨대 해체주의 강의를 듣고 무선인터넷을 통해 해당작가의 작품을 확인하는 식으로 독서행위가 입체공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도, 평생 학벌로 울궈먹는 사람도 딱 보면 알아요.”

가장 경계하는 것은 ‘성공의 덫’. 그는 미샤 화장품을 예로 들었다. 처음에는 저가전략으로 거품 낀 화장품 업계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지만 이노베이션에 실패하면서 자연주의를 덧도입한 페이스샵에 밀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에 밀린 일본의 소니나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주체사상의 북한도 마찬가지다. 그는 삼성도 언제든 그 덫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현재대로라면 10년 뒤에 망할 것이다’라며 모든 것을 혁신하는 싱가포르한테서 배워야 합니다.”

조선시대가 지식사회 모델

그는 지식사회의 모델로 선비가 대우받은 조선시대를 꼽았다. 지식이 풍부한 선비는 돈이 없어도 대우 받았고 배움이 없는 상놈은 돈이 많아도 천하게 여겼다. 귀천은 돈이 아니라 지식이었던 것. 왕도 동궁시절에는 과외선생이 붙었고 왕이 되어서도 경연 등을 통해 공부를 계속했다. 이를 게을리하면 신하한테서 업신여김을 받았고 심지어 탄핵까지 받았다. 화두는 공부하지 않은 386세대와 그들에게 둘러싸여 세상을 읽지 못하는 노무현 정권으로 옮아갔다. “지도자는 열심히 배우고 들어야 할 뿐 아니라 안보이는 것을 보아야 하지요. ‘뉴턴의 사과’는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꿰뚫어보는 능력과 축적된 지식이 결합된 결과입니다.”

지난 12월28일 종무식을 겸해 오전 9시 회의실에 책 30권이 쌓였다. 전날 행사담당자인 곽진욱 차장이 준비한 것으로 이 부회장이 내놓은 것들도 자기계발, 경영사례, 디자인 관련 책들이다. 선착순으로 좋아하는 책을 한권씩 골라갔다. 김태현(28)씨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얌 고객에 미쳐라> 한 권을 골랐다. 자신이 맡은 소비자 판매에 관한 책으로, 자신이 맡고 있는 신제품 마케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 까닭이다. 이러한 북랠리 행사는 1998년부터 시작돼 해를 거르지 않고 한해 두 차례 이상 실시됐다.

이메이션에서는 책값을 회사에서 대준다. 사고의 폭, 창의력을 키우는데 독서만한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직원들이 소설이나 어학 등을 제외한 책을 산 뒤 결제를 올리면 한달 단위로 전액 지급된다. 주제나 금액에 제한이 없고 보고서나 독후감 등 부담도 없다. 한해 2500만원 정도가 책값으로 나가니 직원 한사람이 평균 100만원어치의 책을 사서 읽는 셈이다. 마케팅담당 함동철(37)씨는 “작년에 책값으로 70만여원을 지원받았다”면서 “회사 안에서도 눈치 보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다”고 전했다.

3년 전부터는 젊은 직원들 사이에 ‘책사모’라는 동아리가 만들어져 아침저녁으로 책을 읽고 난 뒤 의견을 주고받는다. 이 부회장은 ‘그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처음 쭈뼛쭈뼛하던 책값 결제신청이 시행 10년이 지난 지금 자율로 이뤄지듯이 책동아리 역시 특별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하나를 알면 나머지도 추측이 가능한 터. 업무라도 다르겠는가. 8시 출근에 5시 퇴근. 5시30분 이후 회사에 남아있는 인원은 거의 없다. 모든 직원이 시간 내 업무를 소화해내는 집중업무를 해내 야근은 거의 없다. 또 외근 직원들은 업무종료 시 현지퇴근을 하고 불필요한 형식적 보고절차를 하지 않는다. 주력제품들이 팬시스러워 디자인과 포장이 중시되는 데 이는 독서를 권장하는 분위기는 딱 맞아떨어져 의욕적인 런칭과 매출증대로 이어진 것이다.

사내 북랠리 행사…선착순 책 선물

작년 8월에 입사한 김태현씨는 ‘상사가 나간 뒤에 퇴근하라’는 주변의 말, ‘한달에 네번쯤 집에 들어간다’는 다른회사 또래의 말을 듣는 터에 5시 퇴근이 이상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어울릴 사람이나 할 일이 없어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모자란다. 입사이래 넉달동안 50여권(책값지원 30, 북랠리 20권)의 책을 읽었다. 매일매일 읽지 않으면 책이 쌓이고 트렌드를 좇지 않으면 뒤쳐진다. “여기는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게 유도해서 좋습니다. 다른회사 동기들이 무척 부러워하지요.”

이메이션코리아는 스스로 작고 단단하지만 경쟁사한테는 부럽고 무서운 회사다. 내년의 인센티브 여행, 일명 학습여행의 목표는 하와이다.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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