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과 자본주의 / 김영민 지음 늘봄 펴냄 11000원
잠깐독서 / 산책과 자본주의
청계천이 새 단장을 하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며 산책을 한다. 겉으로는 여유로워 보일지모르지만 모두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상처를 받은 탓에 세계가 세속이라는 미로로 바뀐 사람들이다. 상처는 자본제적 삶의 양식, 체계적 식민화의 그늘에서 비롯됐다.
책은 산책을 자본주의 사회를 통찰하는 중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산책조차 무해한 듯 점유하는 자본의 ‘알리바리 체계’(르페브르)를 고발한다. 체계는 모든 것들을 체계에 복무하게 만든다. 개인들에게 체계의 바깥을 허용하기 싫은 체계는 사적인 시간인 아침을 찾아냈다. 아침형 인간이다. 경쟁사회가 바뀌지 않으니 당신의 경쟁력을 바꾸라는 체계의 명령이다. 무지가 복종을 불러 너도나도 아침형 인간을 외친다. 수백년 전부터 밥을 짓기 위해 해보다 빨리 눈 떤 이들의 삶의 토대가 과연 얼마나 바뀌었을까. 인간의 근현대적 일상은 그 일상의 무지 속에서 체계화된다. 결국 체계의 ‘생존’은 무지에 의지한다.
자본의 가장 대중적인 속성을 지닌 핸드폰에도 비판적 시선을 투사한다. 핸드폰이라는 사이비 창/문은 조직적 나르시시즘, 체계적 자기증식의 사회인 우리의 ‘거울사회’가 거울이 아니라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허위의식을 뻔뻔스럽게 전시해놓는 장치라고 말한다. 거울사회란,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문을 얻지 못한 채 기껏 세상을 구경하는 창에 만족하는 태도, 혹은 심지어 그 창을 아예 거울로 바꾼 채 나르시스 속에 자폐하는 현실”을 ‘거울현상’이라 할 때 “이 거울현상으로 뒤범벅인 사회”를 가리킨다. 책은 자본주의 속성을 건달에서도 찾아낸다. 근대의 자본재적 삶은 노동의 세계와 축제의 세계를 분리배치하려는 시스템화다. 건달이 사치와 낭비의 특별한 한 방식이며 특히 노동의 부재에 얹힌 집단적 환상의 이미지를 키우는 대중적 욕망의 대상이라고 본다.
저자에게 산책은 소통도 아니고 교통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무위와 부재의 사귐이 가능한 사이공간이고 ‘동무’다. 청계천이라는 극히 도시주의적인 호들갑을 접하면서 그게 가장 반자연적인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 “청계천에서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그곳에 자연은 없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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