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집>(전3권) 박지원 지음. 신호열·김명호 옮김. 돌베개 펴냄. 7만5000원
<지금 조선의시를 쓰라> 박지원 지음. 김명호 엮고 옮김. 돌베개 펴냄. 1만8000원
잠깐독서 /
까마귀는 검은색인가. 조선 후기 북학파를 대표하는 문인이자 사상가 박지원은 까마귀의 빛깔로부터 그의 사실주의론을 끌어낸다. 사람들은 까마귀를 검다고 여기지만 그가 보기에 까마귀는 “홀연 젖빛 금색이 번지기도 하고, 다시 공작석의 빛을 발하기도” 하며, 햇빛 속에서 자주색이나 비취색으로 바뀌는, 풍부한 빛을 머금은 존재다. 그러나 사람들의 굳은 마음은 까마귀를 무작정 검다고만 한다. 박지원은 이를 나무라며 현실의 살아 있는 까마귀 빛깔을 보라고 일갈한다. 그의 문학의 성취는 이렇게 대상을 생명체로 보는데서 출발한다.
주로 벗들의 문집에 써준 서문을 통해 전개된 박지원의 독창적인 문학론은 글쓰기를 병법에 빗댄 ‘소단적치인’이란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용병에 뛰어난 장수에겐 버릴 병졸이 없고, 글을 잘 짓는 이에겐 가려 쓸 글자가 없다.” 저잣거리의 속담이나 토속어를 통해서도 중국인들이 경전으로 받드는 <시경>과 동등한 문학성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박지원의 사실주의는 이덕무의 시집 ‘영처고’에 부친 서문에서 절정에 이른다. “조선은 산천과 기후, 언어와 풍속이 중국과 다르다. 그럼에도 중국 문체 베끼기에만 힘쓴다면 그 글이 중국 글과 닮을수록 내용은 더욱 거짓될 것이다.” 중국 문장의 모방에 목숨 거는 이들은 이를테면 ‘까마귀란 검은빛’이란 선입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들이다.
박지원의 문학적 성취와 문장론이 한데 모인 그의 문집 <연암집> 완역판이 나왔다. 민족문화추진회 국학연구원 교수로 있으면서 <완당전집> 등 수많은 한국 고전을 현대어로 옮긴 신호열(1914~1993) 교수가 1978년부터 제자들과 <연암집>을 강독하면서 구술한 번역 초고를 그의 제자인 김명호 성균관대 교수(54·한문학)가 정리한 책이다. 본디 2005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국역 연암집’(전2권)이란 제목으로 펴낸 바 있으나, 일반 독자가 접근하기 어려워 주석과 교정을 더해 이번에 다시 펴냈다.
김명호 교수는 이와 더불어 박지원의 소설·시·산문 가운데 대표작 100편을 모아 ‘연암 박지원 문학 선집’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를 함께 펴냈다. 기존의 필사본과 활자본을 대조해 원문을 교감한 <연암집>이 전공자를 위한 참고서라면, ‘선집’은 한글세대 독자들을 위한 보급판인 셈이다. ‘선집’의 문장과 <연암집>을 비교해보면, 쉽고 유려한 한글 문장으로 고칠 수 있음에도 스승의 표현과 말투를 살려 그 가르침의 흔적을 살리려 애쓴 제자의 정성스런 마음이 행간에서 묻어난다.
이상수 기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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