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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5천만년 뒤 동물의 왕국…그곳에 인간은 없다

등록 2007-04-05 16:29

<인류 시대 이후의 미래 동물 이야기> 두걸 딕슨 지음. 이한음 옮김. 승산 펴냄. 1만5000원.
<인류 시대 이후의 미래 동물 이야기> 두걸 딕슨 지음. 이한음 옮김. 승산 펴냄. 1만5000원.
잠깐독서 /

바늘끝 같이 따갑던 햇살이 반쯤 눅은 늦여름 오후. ‘토끼’ 10여 마리가 무성한 수풀을 헤집으며 뛰어 다닌다. 놀란듯한 큰 눈과 쫑긋 솟은 두 귀는 영락없는 토끼. 반면 얼추 2m에 이르는 키는 사슴에 가깝다. 깡충거리는 대신 앞뒤로 시원하게 뻗는 네 다리가 날렵하다. 래벅. 5천만년 뒤 사람이 바글거리던 온대지역 초원엔 토끼의 후예인 래벅들이 날뛴다.

‘5천만년 뒤에는 어떤 기이한 생물들이 살게 될까.’ 책이 부여잡은 뼈대는 6500만년 전 공룡화석처럼 앙상하다. 그러나 저자는 현재의 생태계에 억겁의 시간과 진화의 단단한 법칙을 적용하고, 생태학적 상상력이라는 유전자를 보태 총천연색의 미래를 펼쳐낸다. 유라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북아메리카 대륙들이 하나로 합쳐지고 남아메리카 대륙은 섬으로 떨어져 나간다. 사자가 사라진 곳에 쥐가 왕이 된다. 환경에 민감한 육식동물은 멸종하고, 그 자리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포식쥐’가 들어선다. 조상이 쥐인 것이 분명한, 그러나 개만한 크기의 팔랑크스가 래벅 사냥에 나선다. 귀여운 꼬마 펭귄은 지구에서 가장 큰 동물이 됐다. 바다에는 펭귄의 후손인 보어텍스가 12m에 달하는 몸을 뒤척인다.

먹이사슬, 번식방법 등의 생태지식이 든든하게 뒤를 받치고, 생물도감을 보는 듯한 정교한 삽화들은 ‘5천만년 뒤 동물의 왕국’을 기후와 지역별로 완벽하게 재현한다. 왕국에서 진작에 도태된 것은 인간이다. “인류의 폐기물에 중독”된 지구가 절단나면서 가장 악독한 지배생명체로 기억될 인류도 끝장난 것이다. 저자는 “(1억년 뒤) 인간만큼 지능이 높은 동물이 다시 한번 진화할지 모른다”며 식충동물이나 까마귀를 예로 든다. “1억년전 포유류도 공룡의 발치에서 쪼르륵 도망치던 존재들이 아니었던가.”

1981년에 쓰였지만, 26년이란 시간차는 5천만년이라는 장구한 지질학적 시간에 비하면 초라하다. 진화라는 오래된 미래를 경험하는 색다른 기회다. 책 말미에는 책에 등장한 동물들의 1억년 진화도가 실려 있다. 저자의 상상력에 끝내 굴복해 버리고 마는 순간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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