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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도덕적 책무 없는 과학은 기쁨아닌 경악

등록 2007-10-26 22:11수정 2007-10-26 22:19

김용규의 문학 속 철학산책
김용규의 문학 속 철학산책
김용규의 문학 속 철학산책 /

<갈릴레오의 생애>를 통해서 본 ‘과학’의 의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갈릴레오의 생애>의 첫 대본은 1939년에 덴마크에서 씌어 1943년에 스위스 취리히에서 초연되었다. 당시 제목은 <지구는 움직인다>였고 주제는 과학이 종교나 정치에 의해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45년 원자폭탄에 의한 인류 초유의 대량학살이 발생하자, 이에 경악한 브레히트는 서둘러 작품을 수정했다. 제목을 <갈릴레오의 생애>로 바꾸고 주제도 과학자의 도덕적 책무로 방향을 틀었다. 1947년 7월 30일 로스앤젤레스 비벌리힐스에서 있었던 첫 공연의 팸플릿에는 당시 브레히트가 품었던 당혹과 고뇌가 담겨 있다. “우리의 공연이, 마침 원자탄이 제조되어 군사적으로 오용되었고 핵물리학이 두터운 비밀장벽에 싸여 있는 시점에, 바로 그 해당 국가에서 막을 올린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폭탄투하 그날은, 이 땅에서 그것을 겪은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승리였지만, 엄연한 오욕적 참패였습니다. 뭔가를 발견한다는 것이 치욕스러운 것이 되어버린 겁니다.”

모두 15장면으로 구성된 <갈릴레오의 생애>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증명한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을 전후하여 겪는 갈등과 변화를 다루고 있다. 종교재판 이전의 갈릴레오가 취한 입장은 장면 8에서 천문학 연구를 그만 두기로 작정한 ‘키 작은 사제’가 갈릴레오와 벌이는 논쟁에 잘 나타나 있다. 사제는 과학적 진리가 때로 인간의 삶에 위험을 줄 수 있으며, 때문에 자기는 민중의 소박한 삶을 무너뜨리는 과학자보다는 그들의 삶에 안식과 용기를 가져다주는 성직자의 길을 가겠다고 말한다. 그의 부모나 누이와 같은 민중들은 “땀방울을 떨어뜨리며 바구니를 끌고 돌길을 올라가는 기운을, 또 어린아이를 낳는 기운을, 그리고 먹는 기운까지를”, 다시 말해 비루하고 고단한 삶을 견뎌내는 힘을 종교에서 얻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갈릴레오는 민중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교황과 교권이며, 과학은 그들의 삶에 오히려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과학은 그 어떤 권위나 제도에도 방해받지 않고 진행되어야 한다고도 강변한다. 갈릴레오의 이런 주장은 <지구는 움직인다>를 쓸 당시 브레히트가 지녔던 신념을 대변한다.

하지만 원자폭탄 투하 이후, 그의 생각이 당혹과 함께 깊어졌다. 그것이 <갈릴레오의 생애>의 장면 14에 전개되는 갈릴레오의 투철한 자기비판으로 나타난다. 그는 예전의 자기처럼 순진무구한 과학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제자 안드레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네들은 무엇 때문에 일하나? 학문의 유일한 목표는 인간 현존의 노고를 덜어주는 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하네. 만약 과학자들이 오로지 지식을 위한 지식을 쌓는 데 만족한다면, 학문은 절름발이가 되고 말 테고, 자네들이 만든 새로운 기계들도 단지 새로운 재앙을 불러오는 물건일 따름이네. 내가 만약 저항을 했더라면 자연과학자들도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 같은 것을 발전시킬 수 있었을 테지. 자신들의 지식을 오로지 인류복지를 위해서만 적용한다는 맹세 말일세!” 이 말에는 과학은 그 어떤 것에도 억압받지 않고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 신성한 자유를 갖고 있지만, 그것은 오로지 인류복지를 위해서만 적용되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을 전제하고서야 그렇다는 브레히트의 새로운 통찰이 들어 있다. 이어 브레히트는 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 시간이 감에 따라 과학은 발전하겠지만 그 진보는 인류로부터 떨어져 나가 결국 “과학자들의 기쁨의 환성이 인류 전체의 경악의 함성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도 덧붙였다. “값싸고 깨끗한 에너지”로서 ‘새로운 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되었던 원자력이 권력자의 필요에 따라 삽시간에 가공할 대량살상무기로 변해버리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한 것에서 나온 성찰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오늘날 새로운 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되지만 기쁨의 환성을 경악의 함성으로 순간 바꾸어버릴 과학기술들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 과학기술들이 불러올 재앙을 사전에 막을 방법이 또 무엇인지를. <갈릴레오의 생애>에서 브레히트는 ‘자연과학자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제안했다.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오늘날 과학은 갈릴레오가 망원경 하나로 목성의 위성들을 발견했던 때와는 전혀 다른 처지에 놓여 있다. 예컨대 유전공학과 같은 첨단과학들은 복잡한 기술로 인해 자본집약적 개발이 요구되고, 그 경제적 파급효과 때문에 정치적 개입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과학자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만으로는 경제적·정치적 권력들과 유착되어 있는 과학기술의 개발을 막거나 안전하게 유도할 수 없다. 설사 그것이 인류를 경악하게 할 위험을 안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갈릴레오의 생애>에는 그 답이 없다. 한데 스위스의 극작가 뒤렌마트가 쓴 <물리학자들>이 마침 이 문제를 다루었다. 다음에 살펴보자.

김용규 자유저술가·<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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