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
‘아파트 광고’가 던진 화두
“웬 광고가 이렇게 많아!” 사람들이 대중매체를 접할 때, 흔히 하는 말이다. 우리 일상은 거의 광고라는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 문화적 관점에서도 광고는 그 시대의 문화적 영향 아래 있는 한편, 역으로 대중문화에 깊고 넓게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사회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행어나 누구나 흥얼댈 수 있는 일상의 멜로디는 상업 광고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그러므로 일상적으로 광고에 노출될 기회가 많은 오늘날 ‘과잉 광고론’ 역시 제기되며 문화연구적 차원에서 광고에 대한 비판 또한 활발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광고 비판이 아니라 철학적 성찰이다. 좋든 싫든 광고와 함께 일상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광고를 철학적 사유의 통로로 삼는 일은, 광고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성적 전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광고가 인간의 욕구에 응답하며 상품 구매를 설득하는 내용과 표현 양식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광고의 메시지를 역으로 활용하면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 요긴한 지적 도구가 될 수 있다.
우선 아파트 광고를 한번 보자.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거의 집과 동의어다. 그러므로 광고 내용은 인간 삶의 삼대 기본 요소인 의식주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집의 본질을 담고 있다. 집이란 우리에게 무엇일까? 그 의미가 너무나 당연한 것 같아 쉽지 않은 질문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평안, 행복, 만족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집과 자유의 개념을 연결시키는 데는 인색할 것이다. 하지만 집이야말로 자유의 모순적 본질을 그대로 담고 있는 삶의 조건이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런데, 하나는 ‘한계’라는 점에서 그렇고 다른 하나는 ‘의존’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자유의 한계’라는 말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자유에도 한계가 있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 바로 한계가 현실에서 자유를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집은 타인의 시선과 간섭을 배제하는 경계이자, 그 안에서 나만의(또는 우리만의) 삶을 보장해주는 한계이다. 내 집에서는 적어도 ‘내 맘대로’라는 자유의 일차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의 이런 양면성은 인간에게 태생적인 건지 모른다. 철학자 칸트는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우는 이유를, 자궁이라는 한계 덕에 그 안에서 무척 자유롭게 ‘떠다니며’ 아홉 달을 보낸 태아가 순간 자유를 상실했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계 속에서 자유의 실현이라는 것은 모순적이지만 그래도 일상의 경험을 상기하면 그 의미에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의존(dependence)의 개념이 자유와 연결된다는 것에는 얼른 공감하기 어려울지 모르겠다. 우리의 고정관념은 독립(independence)과 자유를 더욱 쉽게 연계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존은 좀 특별한 의미인데, 이해를 돕기 위해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의 ‘전도(顚倒)된 창살 효과’를 상기해보자. 이는 정신적 발달의 정도가 높고 자유분방한 동물일수록 고정된 ‘집’이 더욱 필요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로렌츠는 그의 집에서 기러기ㆍ까마귀ㆍ원숭이ㆍ몽구스 같은 동물들을 자유롭게 길렀는데, 그는 “동물들은 완전한 자유 속에 살면서 우리 집에 친밀감을 느낀다”고 한다. 로렌츠가 기르는 동물들은 자유롭게 집을 떠나 생활하다가도 집으로 돌아온다. 그의 집에서는 창살이 딴 곳에서와는 정반대의 역할을 한다. 동물들을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집안 사람들의 삶과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제한하는 구실을 하는 것뿐이다. 다른 집에서는 “새가 새장에서 나왔어요. 도망가지 못하게 빨리 창문을 닫아요”라고 하지만, 그의 집에서는 반대로 “저런, 창문을 닫아요. 카카두와 원숭이가 들어오려고 해요!” 라고 한다. 나는 로렌츠의 전도된 창살 효과를 ‘베이스 캠프 이론’이라고 일컫는다. 동물들에게는 로렌츠의 집과 그곳에 있는 우리나 새장이 일종의 ‘베이스 캠프’와 같은 것이다. 그것이 보장됨으로써 동물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밖’에서 맘껏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안’이라는 확실히 기댈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댈 언덕이 있을 때’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식을 얻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이 좋다고 집 떠나 살지는 마세요.” 같은 광고 카피는 “집이 있으니까, 자유롭게 자연 속으로 떠나세요”라는 뜻을 뒤집어 표현한 것이다. 오늘날 누구나 바라는 ‘내 집 마련’(이때 ‘우리 집 마련’이라고 하지 않는 것도 자유를 추구하는 심리와 연관 있다)은 이 험한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를 실현하려는 베이스 캠프 구축하기와 같은 것이다. 사람들이 ‘내 집’을 마련하고 싶은 것은 자유롭기 위해서다. 그러면 행복은 따라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로렌츠는 그의 집에서 기러기ㆍ까마귀ㆍ원숭이ㆍ몽구스 같은 동물들을 자유롭게 길렀는데, 그는 “동물들은 완전한 자유 속에 살면서 우리 집에 친밀감을 느낀다”고 한다. 로렌츠가 기르는 동물들은 자유롭게 집을 떠나 생활하다가도 집으로 돌아온다. 그의 집에서는 창살이 딴 곳에서와는 정반대의 역할을 한다. 동물들을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집안 사람들의 삶과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제한하는 구실을 하는 것뿐이다. 다른 집에서는 “새가 새장에서 나왔어요. 도망가지 못하게 빨리 창문을 닫아요”라고 하지만, 그의 집에서는 반대로 “저런, 창문을 닫아요. 카카두와 원숭이가 들어오려고 해요!” 라고 한다. 나는 로렌츠의 전도된 창살 효과를 ‘베이스 캠프 이론’이라고 일컫는다. 동물들에게는 로렌츠의 집과 그곳에 있는 우리나 새장이 일종의 ‘베이스 캠프’와 같은 것이다. 그것이 보장됨으로써 동물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밖’에서 맘껏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안’이라는 확실히 기댈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댈 언덕이 있을 때’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식을 얻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이 좋다고 집 떠나 살지는 마세요.” 같은 광고 카피는 “집이 있으니까, 자유롭게 자연 속으로 떠나세요”라는 뜻을 뒤집어 표현한 것이다. 오늘날 누구나 바라는 ‘내 집 마련’(이때 ‘우리 집 마련’이라고 하지 않는 것도 자유를 추구하는 심리와 연관 있다)은 이 험한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를 실현하려는 베이스 캠프 구축하기와 같은 것이다. 사람들이 ‘내 집’을 마련하고 싶은 것은 자유롭기 위해서다. 그러면 행복은 따라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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