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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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대장금으로 본 ‘요리과정이 제공하는 생각의 화두’
이병훈 감독이 연출한 텔레비전 드라마 〈대장금〉은 종영한 지 몇 해가 지났어도 관심의 대상이다. 국외에 진출해서도 계속 인기를 끌고 있다. 〈대장금〉의 인기 비결은 역시 이야기의 힘이다. 몇 줄 안 되는 역사의 기록에서 실마리를 얻었을 뿐 거의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장금의 이야기는 의외의 결과에 이른다. 그 결과는 〈대장금〉이 어떤 의미에서 ‘사극 판타지’라는 것이다.
판타지의 배경은 무대 안의 무대라고 할 수 있는 각종 음식 재료, 다양한 식기들, 그리고 후반부에 등장하는 약재료와 약탕기들이다. 이 무수하게 다양하고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소통’과 ‘연계’ 그리고 ‘결합’이 이야기의 바탕이다. 작가이자 판타지 이론가인 존 로널드 톨킨은 이질적이고 이탈적이며 돌발적인 것들을 ‘합리적으로’ 조직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환상적 서사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이질적 다양성은 환상성을 보장하고, 서사적 합리성은 현실감을 부여한다. 〈대장금〉의 판타지는 신비로운 나라에서 또는 광활한 우주를 무대로 전개되는 게 아니라, 식기, 약탕기, 식재료, 약재료 같은 ‘미세한 세계’ 안에서 작동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대장금〉의 작가가 역사에서 찾아낸 것은 ‘의녀’의 기록이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면서 ‘현실감 있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은 ‘요리의 과정’이다. 요리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다. 아니, 인간은 요리하는 동물이다. 최근의 생물인류학은 ‘요리의 진화’를 진지하게 보기 시작했다. 리처드 랭검 같은 학자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 “요리의 진화는 그동안 거의 완전히 무시되었지만 중요한 주제이다”라고 강조한다. 인류가 진화의 어느 시점에서, ‘기다림’의 역할과 의미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류는 그 시점에서 먹이가 있는 영역을 옮겨 다니면서 먹는 대신 먹을거리를 모아 일정한 장소에서 그것이 익을 때까지 앉아 ‘기다리게’ 되었다. “그 결과 갑작스럽게 자연의 먹이 외에 훔칠 수 있는 먹이 영역이 생겨났다.” 여기에서 랭검은 생산자와 약탈자의 역학 관계가 생겨났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좀 더 보편적인 관점에서 보면, 요리의 진화가 지니는 의미는 랭검이 생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갈 수 있다. 요리는 인간 삶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의 ‘과정’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먹이를 바로 먹으면 과정은 생기지 않는다. 요리의 철학적 의미는 그것 자체가 곧 ‘특별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때로 매우 긴 시간과 다양한 공간을 활용하는 과정이다. 이런 특별한 과정은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제공한다. 〈대장금〉에서는 그 과정에 권력이 개입하면서 사건을 일으키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몰고 간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요리의 과정’과 ‘권력의 개입’이라는 두 줄기로 엮어 가는 이야기이다. 요리의 과정을 지키려는 자와 그 과정에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해서 손상을 입히려는 자 사이의 투쟁, 그것이 〈대장금〉의 주된 줄거리다. 수라간의 최 상궁은 조카 금영과 함께 정치적 권력이 개입할 수 있는 요리의 과정을 또한 자신들 고유의 권력으로 삼으려 한다. 주인공 장금의 어머니와 그의 절친한 친구 한 상궁은 인간의 목숨과 밀접한 그 생명의 과정을 순수하게 지키려다 희생된 사람들이다. 장금과 함께 옥에 갇힌 한 상궁은 자신이 무슨 죄가 있냐고 절규한다. 최 상궁은 싸늘하게 답한다. “내게 몸을 맡기지 않은 죄, 권력에 몸을 숙이지 않은 죄!” 그 권력은 ‘가진 자’의 권력, 기득권자의 권력이다. 그래도 요리사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않는 금영은 어느 순간 고모 최 상궁에게 반발한다. “요리하는 데에도 늘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그 아이(장금)의 재주가 부럽습니다.” 하지만 최 상궁은 금영의 창조적 욕구를 그 싹부터 잘라버린다. “시끄럽다. 뭔가 해보고 부딪치는 것은 없는 사람이나 하는 짓이야! 달리 편히 지낼 방도가 없으니, 그리 하는 것이지. 네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방법을 써보려 하느냐.”
한편에는 환상적 창조력으로 ‘뭔가 만드는 일’ 그 자체에 가치와 목적을 두는 자가 있다. 이는 한 상궁이 장금에게 “너는 맛을 그리는 능력이 있다”라고 한 대사에도 잘 나타나 있다. 다른 편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환상의 모든 요소를 억압하려는 자가 있다. 환상의 자유는 기존 권력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요리의 과정이 야기하는 갈등은 이 둘 사이의 투쟁이다. 그런데 이 싸움에서 결정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미세함’이다. 한쪽은 열린 영혼으로 미세한 것들을 놓치지 않으며 요리의 순수한 과정을 살리려 하고, 다른 한쪽은 부동의 권력으로 미세한 차이들을 삭제하며 그 과정을 억누르려 한다. 이렇게 보면 〈대장금〉의 이야기는 미세함을 매개로 하는 환상과 권력의 변증법으로 모두 설명될 수도 있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실제로 이 드라마는 ‘요리의 과정’과 ‘권력의 개입’이라는 두 줄기로 엮어 가는 이야기이다. 요리의 과정을 지키려는 자와 그 과정에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해서 손상을 입히려는 자 사이의 투쟁, 그것이 〈대장금〉의 주된 줄거리다. 수라간의 최 상궁은 조카 금영과 함께 정치적 권력이 개입할 수 있는 요리의 과정을 또한 자신들 고유의 권력으로 삼으려 한다. 주인공 장금의 어머니와 그의 절친한 친구 한 상궁은 인간의 목숨과 밀접한 그 생명의 과정을 순수하게 지키려다 희생된 사람들이다. 장금과 함께 옥에 갇힌 한 상궁은 자신이 무슨 죄가 있냐고 절규한다. 최 상궁은 싸늘하게 답한다. “내게 몸을 맡기지 않은 죄, 권력에 몸을 숙이지 않은 죄!” 그 권력은 ‘가진 자’의 권력, 기득권자의 권력이다. 그래도 요리사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않는 금영은 어느 순간 고모 최 상궁에게 반발한다. “요리하는 데에도 늘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그 아이(장금)의 재주가 부럽습니다.” 하지만 최 상궁은 금영의 창조적 욕구를 그 싹부터 잘라버린다. “시끄럽다. 뭔가 해보고 부딪치는 것은 없는 사람이나 하는 짓이야! 달리 편히 지낼 방도가 없으니, 그리 하는 것이지. 네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방법을 써보려 하느냐.”
한편에는 환상적 창조력으로 ‘뭔가 만드는 일’ 그 자체에 가치와 목적을 두는 자가 있다. 이는 한 상궁이 장금에게 “너는 맛을 그리는 능력이 있다”라고 한 대사에도 잘 나타나 있다. 다른 편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환상의 모든 요소를 억압하려는 자가 있다. 환상의 자유는 기존 권력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요리의 과정이 야기하는 갈등은 이 둘 사이의 투쟁이다. 그런데 이 싸움에서 결정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미세함’이다. 한쪽은 열린 영혼으로 미세한 것들을 놓치지 않으며 요리의 순수한 과정을 살리려 하고, 다른 한쪽은 부동의 권력으로 미세한 차이들을 삭제하며 그 과정을 억누르려 한다. 이렇게 보면 〈대장금〉의 이야기는 미세함을 매개로 하는 환상과 권력의 변증법으로 모두 설명될 수도 있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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