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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인간의 의식과 영혼은 과연 무엇일까

등록 2008-01-25 21:32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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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 사토시의 애니 ‘파프리카’가 제기하는 ‘묵은 질문들’

신경정신연구소의 지바 아쓰코는 ‘디시(DC)미니’라는 심리 치료 기계를 이용해 의뢰인의 꿈속에 들어가 신경증의 원인을 밝혀내고 치료한다. 이때 꿈에 들어가는 상냥하고 발랄한 치료사는 아쓰코의 또 다른 자아 파프리카이다. 그러던 어느 날 디시미니가 도난 당하고 꿈의 세계는 혼란에 빠진다. 꿈은 또다른 꿈을 먹어치우면서 자가 증식하고 현실과 꿈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더 나아가 파프리카의 활약은 꿈과 현실이 전도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화가 난 아쓰코가 말한다. “파프리카, 왜 내 말을 듣지 않지? 너는 내 분신이라고.” 파프리카는 묘한 미소를 흘리며 맞받아친다. “아쓰코가 내 분신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 꿈속의 자아가 실재이고 현실의 자아가 그 분신임을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곤 사토시 감독의 〈파프리카〉는 현대 뇌과학의 연구 성과들을 활용하고 있다. 뇌 연구가 수전 그린필드가 말하듯이, 꿈은 옛날부터 인류에게 매혹적인 관심과 탐구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꿈이 의식의 한 형태’라는 점까지도 잘 알려져 있다. 뇌전도 측정기가 도입된 이래, 잠잘 때의 뇌파 유형이 깨어 있을 때와는 아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꿈을 꿀 때는 예외이다. 꿈을 꿀 때의 뇌파 유형은 깨어 있을 때와 구별할 수 없다. 양전자방출단층촬영법 같은 최근의 기술은, 꿈을 꾸는 것과 깨어 있는 상태가 뇌의 견지에서 서로 얼마나 유사한지를 한층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경학자 로돌포 리나스는 더 나아가 우리의 뇌가 늘 꿈을 꾸는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한다. 뇌가 끊임없이 이미지를 산출해 머릿속에서 ‘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외부 세계는 투영된 이미지다. 사실 그것은 일종의 꿈이다. 잠들었을 때 꾸는 꿈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보고, 인식하고, 능동적으로 꿈을 꾸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거대한 우주를 수용해 아주 작은 머릿속에 집어넣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을 끌어안고,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그것을 밖으로 투영하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우리 인식의 객관성과 외부 세계의 실재성에 관한 아주 오랜 논쟁을 다시금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린필드가 말하듯이 인식의 본질과 연관한 쟁점은 해답보다는 궁금증을 더해 준다.


인식론적 논쟁에 앞서 〈파프리카〉는 좀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철학적으로 두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그 하나는 인간 의식의 세계가 지니는 의미와 가치다. 데모크리토스는 “인간은 소우주다”라고 했다. 그것은 인간 앞에 광활하게 펼쳐진 대우주에 견줘 한 말이다. 하지만 소우주도 대우주 못지않게 광활하다. 곤 사토시는 이를 잘 보여준다. 〈파프리카〉는 색깔이 범람하는 애니메이션이다. 가장 화려한 의식 세계인 꿈을 다루기 때문이다. 꿈은 색뿐만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풍부하고 범람하는 세계이다. 감독이 가장 신경 썼다는 ‘세상 만물의 퍼레이드’ 장면처럼.

의식의 세계는 이른바 무의식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일지 모르고 대우주의 현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조그만 뇌에서 비롯한다. 하지만 ‘작은 것에서 큰 것이 나온다’. 〈파프리카〉의 첫 장면은,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의식이 창출해내는 꿈같은 세계의 관계를 기막히게 상징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어느 순간 조그만 장난감 자동차가 동그란 조명을 받고 등장한다. 곧이어 그 속에서 해면체 같이 흐물흐물한 어릿광대가 기어 나오더니 점점 사람만큼 커져서는 “이제 쇼가 시작됩니다”라고 외친다. 작은 의식 세계가 대우주의 쇼를 펼칠 수 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뇌과학은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미개척 영역이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것이 대우주를 탐사하는 것 못지않게 풍부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기 때문일 게다.

다른 하나는 영혼에 대한 관심의 부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프시케)에 관한 지식은 모든 진리, 특히 자연을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물들의 제일원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영혼의 본성과 실체 그리고 그것의 속성들을 숙고하고 탐구하고자 한다”고 했다.

오늘날 뇌과학과 그 연관 학문에서는 물리 화학 법칙으로 전통적 추상 개념들, 곧 정신·마음·영혼 등을 해명하려고 탐구한다. 과학의 세계에 ‘신의 자리’는 없어졌을지 모르지만, 영혼의 자리는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해 과학적으로 밝혀내는 것 이상으로 이들에 대한 궁금증과 미해결 과제는 더 늘어날지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이겠지만 마음과 영혼의 비밀을 밝혀내고자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자연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역사학자 브루스 매즐리시는 오늘날 “뇌과학과 인공지능 분야의 논문들은 묵은 질문을 새로운 형태로 제기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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