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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새로움 즐기는 영혼에 TV뉴스는 위험

등록 2008-02-15 19:29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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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

텔레비전 뉴스가 ‘새로움을 제공한다는 것’의 의미

현대 대중문화의 역사는 방송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방송은 대중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이는 우리 일상의 경험으로도 알 수 있다. 텔레비전은 벌써 오래전부터 저 유명한 ‘바보상자’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만큼 우리 일상생활에 깊고 넓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매체라는 뜻이다. 또한 그만큼 사회·문화적으로 진지한 비판의 대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바보상자에 탐닉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우리 삶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성찰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방송 현실에서 뉴스의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지만, 편성 횟수와 시청자의 의식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 차원에서 뉴스는 방송의 핵심이다. 더구나 ‘뉴스9’ ‘뉴스데스크’ ‘8시 뉴스’ 등 각 방송사 메인 뉴스의 이미지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성의 최면 효과’를 극대화한다. 한 예로, 텔레비전 속 남녀 앵커는 우리의 전통 사회 구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모든 것을 주도하는 남성과 그를 다소곳이 보조하는 여성이란 패턴이 뉴스 진행만큼 잘 반영돼 있는 곳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비평은 끝이 없겠지만, 이 글에서는 뉴스의 사회학적·인간학적인 면을 주로 살펴보고자 한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오늘날 뉴스는 ‘패션’과 유사하며, 인간학적 관점에서 그것은 ‘변화 체험의 역설’을 보여준다.

뉴스(news)의 본질은 그 어원처럼 ‘새로움’이다. 이런 점에서 뉴스는 서구의 모더니티(modernity) 정신과 밀접하다. ‘지금’(modo)이라는 뜻의 라틴어 어원에서 유래한 모더니티의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 변화하는 것들’이다. 변화의 순간들은 당연히 새로움을 동반한다. 그러므로 새로움을 창출하는 것은 현대성의 특징이다. 새로움은 시작, 탄생의 뜻과 함께 창조, 발전, 개혁, 희망, 패러다임 변화, 사건 발생 등의 의미를 품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뉴스 거리’가 되는 것들은 항상 이런 의미를 바탕에 깔고 있다는 사실을 관찰하는 것은 뉴스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뉴스는 새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을 펼쳐 보여야 한다. 그런데 하나의 새로움은 또다른 새로움을 필요로 한다. 새로움이란 말 그대로 일시적이고 지나가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번 새로이 등장한 것이 지속적이거나 영구하다면 그것은 새로움의 의미 자체를 소멸시키게 된다. 하나의 새로움은 다른 새로움으로 교체되어야 한다. 지속적인 것은 새로움의 탄생과 소멸일 뿐이다. 아니면 적어도 하나의 새로움은 계속 변형되고 다른 요소들이 첨가되어 ‘새롭게’ 보여야 한다. 그래서 순환적으로 반복되는 같은 내용의 뉴스에서도 변화 요소를 첨가하여 새로움의 옷을 입힌다. 이는 특히 정치 뉴스에서 두드러진다.


이런 점에서 뉴스는 패션과 유사하다. 패션의 본질적 특성은 바로 일회성 또는 ‘하루살이 성격’이다. 패션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양식의 옷이 등장하나, 그것이 새롭게 부상해서 절정에 이르는 순간 또다른 새로움에 의해 교체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다. 현대의 미디어비평은 대중매체가 현실을 과장하고 조작할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장 보드리야르의 ‘하이퍼리얼리티 이론’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이미지의 힘으로 ‘소식의 유행’을 주도한다는 특성이 더 흥미로운 것이다. 뉴스가 패션이 되는 경향은 인간학적으로 또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새로움의 탄생은 바로 변화의 결과이다. 역으로 변화의 결과에 따라 새로운 것들이 등장한다고 할 수도 있다. 변화와 새로움은 이렇게 서로 의미의 호환성을 지닐 만큼 밀접하다. 그런데 이미 19세기에 게오르크 지멜이 간파했듯이 지속되는 변화와 새로움의 등장은 “인간에게 엄청난 억압이 될 수” 있다. 인간은 물론 새로움을 거부하고 습관에 절대적으로 기대는 동물과 많이 다르다. 하지만 인간도 새로움과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피로를 느끼며 고통스러워한다. 새로움을 맞는 일과 변화를 몸소 겪는 일은 누구에게든 힘겨운 법이다. 그런데 현대의 미디어는 새로움을 몸으로 겪지 않고, 바라봄으로써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바로 여기에 새로움과 변화의 전달자인 뉴스의 영향력이 있다. 현대인은 시각적 미디어를 통해 점점 더 새로움의 고통을 몸소 겪지 않고 정신으로 즐기는 동물이 되어간다. 이는, 사람들이 신체적 평안과 정신적 방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가능성에 쉽게 끌려 들어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인간 영혼은 새로움을 향해 기운다”라고 했다. 새로움의 전달을 본질로 하는 뉴스는 인간 영혼을 기울게 할 수 있다. 반듯한 차림의 앵커들처럼 가장 건전해 보이는 프로그램인 뉴스가 이른바 ‘천박한’ 프로그램들보다 더욱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는 새로움을 창출하고 전달하는 모든 일들은 인간의 삶에 책임이 있음을 뜻한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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