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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속박과 자유 사이 삶의 곡예

등록 2008-03-28 21:13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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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

‘라디오’를 통해 본 ‘이중성’의 의미

“히틀러가 정치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던 직접적 원인은 라디오와 확성 장치에 있다.”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의 말이다. 저 유명한 오슨 웰스의 방송 드라마 제작 기법을 라디오에 실제로 써먹은 것도 바로 히틀러라고 한다. “라디오는 잠재 의식의 심층에서 부족의 뿔나팔이나 고대 북의 울림처럼 작용한다.” 인간의 마음과 사회를 감동의 소용돌이로 바꾸어 놓는 힘은 라디오 매체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텔레비전이 보편화하기 전까지 라디오가 대중매체로서 막강한 힘을 발휘한 것은 사실이다. 우디 앨런의 영화 <라디오 데이즈>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대중에 미치는 라디오의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미확인 비행물체(UFO)가 나타났다는 뉴스에 안개 속을 운전하던 한 남자가 혼비백산해서 애인과 자동차를 버리고 달아난다. 최근 상영된 하기호 감독의 <라듸오 데이즈>는 조선 최초의 라디오 드라마가 어떻게 대중의 심금을 휘젓고 대중 동원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상은 라디오가 대중매체의 제왕일 때 이야기다. 텔레비전을 비롯해 미디어가 다양해진 오늘날 라디오는 이런 고유의 특성을 자신 안에 잠재함과 동시에 시대 상황에 따른 성격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이중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중성은 개인과 집단, 노출과 은폐, 현실과 상상, 자유와 속박이라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 오늘의 라디오는 이 모순적 이중성에 양다리를 걸치며 존재한다.

우선 개인성과 집단성을 보자. 매클루언은 “한때는 교회가 텅 비게 할 정도의 집단 청취 형태였던 라디오가 텔레비전이 출현한 뒤로는 사적, 개인적 이용의 형태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는 1960년대 “10대들이 텔레비전의 집단에서 나와 개인의 라디오로 돌아갔다”는 사실도 관찰한다. 물론 오늘날 많은 미디어들이 개인화의 경향을 띠고 있지만, 라디오는 특히 비밀스럽게 또는 작은 만족을 느끼며 혼자 듣기의 특성을 강화하고 있다.


라디오의 특성은 곧 구술문화의 특성이다. 월터 옹은 인간 존재의 심연에서 구술성의 특성을 도출해낸다. “목소리로 한 말(the spoken word)은 소리라는 물리적인 상태로 인간 내부에서 생겨나서 의식을 가진 내면, 곧 인격을 인간 상호간에 표명한다.” 더 나아가 “구술된 말(oral word)이 지닌 내면화된 힘은, 인간 존재의 궁극적 관심인 성(聖)스러운 것과 어떤 특수한 방식으로 결부되어 있다.” 이는 인간의 말에 신의 말이 지닌 속성이 잠재한다는 의미가 된다. 말에는 드러나 있는 존재와 숨어 있는 존재의 속성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라디오는 어떤 의미에서 ‘순수 구술문화’를 대표한다. 고전적 의미에서 구술성은 시각성을 동반한다. 보면서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디오 방송에서 우리는 말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소리만 듣는다. 라디오는 모습은 감추고 소리에 모든 의미를 싣는다. 라디오는 노출과 은폐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매체이다. 그러므로 라디오가 신의 소리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 내면의 소리를 실어 나를 때 그 효과는 배가된다.

또한 라디오가 소리만 내고 다른 모든 것을 감춘다는 사실은 청취자의 상상력이 넓고 깊게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는 이미지를 수용자의 머리에 각인시키는 텔레비전이나 영화 같은 매체가 상상의 여지를 별로 제공하지 않는 것과 매우 다르다. 그런데 오늘날 자신의 영역에서 드라마 제작이 거의 실종된 상황에 있는 라디오는 허구와 상상의 세계가 아닌 곳에서 방송의 돌파구를 찾는다. 그것은 ‘일상의 소리’를 전하는 일이다. <라디오 시대> <여성시대> <두 시의 데이트> 등의 명칭을 지닌 프로그램들은 생방송이라는 특성과 함께 보통 사람들이 내는 일상의 소리를 전하는 것을 주된 과제로 삼는다. 여기서 우리는 라디오의 또 다른 이중성을 관찰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엄청난 상상력을 유발할 수 있는 라디오가 구체적인 일상생활의 일들을 전달함으로써 현실과 상상이라는 두 영역을 넘나드는 곡예를 펼친다는 사실이다. 또한 라디오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청취를 가능하게 하는 매체이다. 다시 말해, 라디오는 미디어의 속박과 일정 부분 자유의 허용이라는 이중성을 태생적으로 지닌 매체이다.

이 모든 것은 라디오 그 자체가 삶의 모순을 담고 있는 매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라디오를 즐기는 것은, 집단과 개인, 은폐와 노출, 상상과 현실, 속박과 자유 등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모순의 세계 속에 양다리를 걸치는 것과 같다. 역으로 다차원적 이중성을 지닌 라디오의 특성을 파악하면 인생의 모순이 어디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지 새삼 실감할 수도 있다. 이런 특성은 어쩌면 고도로 발달한 멀티미디어의 시대에도 라디오가 대중과 접촉의 끈을 놓치지 않고 나름의 영역을 지키고 있는 이유일지 모른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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