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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타인 삶을 내 안으로 가져오는 ‘시선의 권력’

등록 2008-03-14 19:32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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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권력에의 의지’ 보여주는 리얼리티 TV

닭들이 모여 앉아 텔레비전 화면에서 실감나는 ‘통닭구이’를 보고 있다. 오늘날 점점 인기를 끌고 있는 ‘텔레비전 리얼리티 프로그램’(이하 ‘리얼티브이’)과 그 시청자를 풍자하는 만화이다.

리얼티브이는 사람들의 일상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한다. 대부분 일상인의 체험과 고백을 주요 내용으로 하며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요소를 혼합한 프로그램이다. 리얼티브이는 공중파와 케이블텔레비전을 통해, 그리고 이들과 인터넷 매체의 접목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이것이 인생이다’ ‘다큐 여자’ ‘세상에 이런 일이’ 등의 타이틀을 달고 있으며, 넓게 보면 ‘미녀들의 수다’ 같이 간접적이지만 외국인이 본 우리 사회 리얼리티 해부라는 방식도 있다. 이런 방송들은 선정성, 사생활 침해, 관음증, 노출증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철학자 올리비에 라자크는 이런 비판을 넘어 〈텔레비전과 동물원〉에서 리얼티브이는 현대판 ‘인간 동물원’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19세기 말 카를 하겐베크에 의해 현대식 동물원이 탄생할 때 함께 성행했던 이국의 원주민 전시와 유사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적극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표방하는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스펙터클의 ‘길들이기 장치’가 리얼티브이의 위험요소라고 본다. 역사학자 나이절 로스펠스도 〈동물원의 탄생〉에서 하겐베크의 ‘인간 전시’ 이후, 이런 경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본다. 인간의 온갖 진기함이 대량소비되는 숱한 텔레비전 쇼가 지금도 성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리얼티브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라자크나 로스펠스의 입장을 넘어서 인간의 심연을 보아야 한다. 동물의 ‘비자연적 역사’에 관심을 둔 로스펠스가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서 착안한 관점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용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살고 있는 동물들에 상당한 관심을 보인다. 이런 관심은 다른 욕망으로 이어진다. 이는 인간이 하고 있는 일에 다른 생물을 참여시키려는 욕구라는 관점이 그것이다.

인간은 그 무엇보다도 자기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당한 관심을 보인다. 이러한 관심을 ‘인간관계’라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우정 또는 애정으로 표시하고 더 나아가 배려와 봉사 같은 방식으로 실천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 관심은 실천의 통로를 갖지 못하고 관심의 단계에서 소멸한다. 인간에게는 이러한 관심을 어떤 방식으로든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것은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참여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기적 주체로서 인간에게 그것은 나의 삶에 다른 사람들을 참여시키려는 욕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 이 욕구는 일정한 수단이 확보될 때 묘한 ‘권력’의 형태를 띤다. 현대의 미디어는 이런 ‘권력에의 의지’에 발동을 거는 작용을 한다. 더구나 텔레비전은 ‘현실을 이동’시킨다는 인간의 오랜 꿈속에 들어 있는 잠재적 권력을 실현한다. 멀리(tele) 있는 것을 가져다 보게(vision) 하기 때문이다. 이는 대단한 힘인 것이다. 더구나 시선으로 이런 ‘파워 라인’을 향유하는 사람에게 권력적 쾌락은 잠재적일 뿐 사실 막대하다. 리얼티브이는 이런 권력적 향유를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자신은 이동의 노고를 겪지 않은 채, 편안한 자세로 타인의 삶을 자신의 방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착각의 문제를 넘어서 실현의 효과를 지닌다. 이는 나의 시선이 가는 곳에 ‘그들의 삶’을 놓으려는 욕구이고 그것의 권력적 표현이다. 더구나 이 경우, 시청자는 텔레비전 속에 ‘전시’되는 타인들의 시선에 불편을 느낄 필요조차 없게 된다. 하겐베크가 이국의 원주민들을 데려다 전시했을 때, 관람자들이 가장 불편을 느낀 것은 전시 대상으로부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시선이었다. 하겐베크 식 ‘사람 쇼’의 쇠퇴와 동시에 인류학적 기록영화가 이를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리얼티브이 역시 어떤 의미에서 인류학적 기록영화이거나 그것을 가장하는 것 아닌가?) 또한 하겐베크 쇼에서 추구하던 ‘그럴듯함’의 중요한 측면 하나는, 전시에 대한 일반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는 일이었다. 기대라는 고정관념에 이의를 제기하는 쇼를 찾아보기는 매우 어려웠다. 더욱이 어떤 경우에는 쇼 참가자들을 비하하거나 비웃는 조악한 고정관념이 쇼 프로그램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이것은 리얼티브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라자크가 우려하는 ‘길들이기’가 시청자와 프로그램 제작자 사이에서 상호적으로 일어남을 보여준다. 화면을 매개로 한 시청자의 권력은 막연히 추측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그들이 향유하고자 하는 ‘권력에의 의지’가 잠재하는 한은 그렇다(이는 앞으로 유시시의 진화를 이해하는 데도 유용한 관점일 것이다). 이상은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라는 전통적 이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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