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
‘라디오 디제이’가 던진 화두
우리가 흔히 디제이(DJ)라는 약칭으로 부르는 디스크 자키는 레코드판을 가리키는 디스크(Disk)와 원래 경마의 기수를 뜻하는 자키(Jockey)의 합성어로 된 말이다. 음반을 타고 달린다는 은유를 품고 있다. 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음반을 쓰는 요즘에 구식 레코드판이 어색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디제이는 바로 그 구식 음반과 중첩된 이미지를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다.
방송의 역사에 따르면, 라디오 디제이는 1930년대 미국인 마틴 블록이라는 사람이 한 산간 지방의 유선방송을 통해 음악을 들려주면서 마을의 토막 소식을 간간이 전해주던 것이 시초였다고 한다. 물론 텔레비전 디제이도 있고 클럽 디제이도 있다. 1960년대 초 우리나라 민영 방송이 디제이 프로그램을 개설할 때도 도심의 음악감상실에서 활동하던 디제이들을 고용해 그들에게 진행을 맡겼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라디오 디제이를 다루는 데는 이유가 있다. 라디오 디제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넓이’가 대세인 방송에서 ‘깊이’의 균형을 맞추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은 브로드캐스트(broadcast)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질적으로 넓이의 매체이다. 그러나 라디오 디제이 프로그램은 역사적으로 깊이를 추구해왔다. 이는 라디오 디제이가 대중화하면서 1980년대 초에 전문 디제이의 양성이 필요함을 강조하던 글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자료를 보면, “디제이의 전문화는 시급하며, 디제이의 역할이 음악의 전달자라는 것을 넘어서 철학적이며 창조적인 언어의 전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디제이가 하는 말은 재치 있고 유머 넘치는 것을 넘어서 “무엇보다도 내용적으로 깊이가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라디오 같이 영상 없는 청음문화의 특성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은유적으로 표현하면 영상이 ‘넓이’라면, 소리는 ‘깊이’이다. 영상이 없기 때문에 음악은 더욱 중요해지고 청취자를 깊이의 세계로 이끄는 효과를 발휘한다(방송 전문가들은 라디오의 특성으로 신속성, 병행성, 친밀성 등에 더해서 ‘음악성’을 특별히 든다). 그래서 특히 깊은 밤의 디제이 프로그램이 생명력을 갖고 지속되는 것이다. ‘별이 빛나는 밤에’ 또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 같은 프로그램이 그 실례이다.
여기서 음악과 함께 깊이 있는 이야기의 방송이라는 과제는 우리에게 중요한 철학적 화두를 던진다. ‘사람들은 왜 삶의 깊이를 찾는가?’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물론 부박한 시대에 사람들이 은근히 바라는 것은 ‘삶의 깊이’이다. 그러나 평온한 일상의 행복과 기쁨이 있을 때도 사람들은 자아의 깊이와 인생의 깊이를 찾는다. 그 이유는, 인간이 다양한 욕구를 갖고 있고 그 가운데서도 인간은 ‘다른 차원’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깊이를 추구하는 행위와 사색은 ‘다름’의 의미와 밀접하다.
예를 들어보자. 자아를 깊이 성찰하게 되면, 일상적으로 알고 있던 것과 ‘같은 나’를 다시 보게 되는 게 아니라,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는 자아 밖의 세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현상에 대해 깊이 성찰하면, 비가시적인 새로운 차원을 발견하게 된다. 플라톤이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닌 다른 차원의 실재로서 이데아를 발견한 것도 깊이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밤 하늘의 깊이 속으로 사유를 뻗어 가면 천체의 신비로움에 놀라게 되고, 사물의 깊이를 파고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해오던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삶을 깊이 있게 사색하면 삶의 다른 차원들을 보게 된다. 사람들이 ‘왜 삶의 깊이를 찾는가?’라는 물음에, 의외로 ‘다른 것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답할 수 있다. 깊이 있는 음악과 언어가 청취자에게 주는 것은 삶의 다른 차원에 대한 경이로운 접촉의 기회이다. 개성 있는 디제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청취자의 사소한 일상적 취향에 맞추는 게 아니라, 청취자를 ‘다름의 낭만’으로 훌쩍 날려보내는 것이리라. 방송 전문가들은 라디오 디제이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우선 음악 중심 진행 디제이(Low profile DJ)로서, 그 역할은 말을 최소화하고 음악 전달에 집중하는 경우다. 그 다음은 음악전문가 디제이(Specialist DJ)로서 음악에 대한 해설과 음악에 연관한 흥미 있는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경우다. 마지막으로 개성파 디제이(Personality DJ)로서 음악을 띄우며 사이사이 삶과 연관된 의미 있는 이야기를 삽입하는 경우다. 이 세 번째 유형이 오늘날 일반화된 라디오 디제이다. 그러므로 퍼스낼러티 디제이는 음악과 언어의 연금술사가 되어야 한다. 깊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성찰은, 그 방법이 다른 데에 있는 게 아니라 철학적·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데에 있음을 일러준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예를 들어보자. 자아를 깊이 성찰하게 되면, 일상적으로 알고 있던 것과 ‘같은 나’를 다시 보게 되는 게 아니라,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는 자아 밖의 세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현상에 대해 깊이 성찰하면, 비가시적인 새로운 차원을 발견하게 된다. 플라톤이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닌 다른 차원의 실재로서 이데아를 발견한 것도 깊이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밤 하늘의 깊이 속으로 사유를 뻗어 가면 천체의 신비로움에 놀라게 되고, 사물의 깊이를 파고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해오던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삶을 깊이 있게 사색하면 삶의 다른 차원들을 보게 된다. 사람들이 ‘왜 삶의 깊이를 찾는가?’라는 물음에, 의외로 ‘다른 것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답할 수 있다. 깊이 있는 음악과 언어가 청취자에게 주는 것은 삶의 다른 차원에 대한 경이로운 접촉의 기회이다. 개성 있는 디제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청취자의 사소한 일상적 취향에 맞추는 게 아니라, 청취자를 ‘다름의 낭만’으로 훌쩍 날려보내는 것이리라. 방송 전문가들은 라디오 디제이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우선 음악 중심 진행 디제이(Low profile DJ)로서, 그 역할은 말을 최소화하고 음악 전달에 집중하는 경우다. 그 다음은 음악전문가 디제이(Specialist DJ)로서 음악에 대한 해설과 음악에 연관한 흥미 있는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경우다. 마지막으로 개성파 디제이(Personality DJ)로서 음악을 띄우며 사이사이 삶과 연관된 의미 있는 이야기를 삽입하는 경우다. 이 세 번째 유형이 오늘날 일반화된 라디오 디제이다. 그러므로 퍼스낼러티 디제이는 음악과 언어의 연금술사가 되어야 한다. 깊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성찰은, 그 방법이 다른 데에 있는 게 아니라 철학적·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데에 있음을 일러준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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