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저녁 서울 수유리 먹자골목 상인들이 코로나19 방역정책에 항의하는 의미로 간판의 불을 끄고 영업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에서 여행업을 하는 이아무개씨는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줄면서 회사 매출이 급감했다. 2019년에 3억5천만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6천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일거리가 없어 직원도 5명에서 2명으로 줄였다. 대신 대출 등으로 빚만 1억원이 새로 생겼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해 소상공인들의 부채가 48조원 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빚으로 버텨온 셈이다.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소상공인 실태조사’에는 코로나19로 소상공인들이 겪은 어려움이 숫자로 고스란히 담겼다.
지난해 소상공인의 총부채는 294조4천억원으로 전년에 견줘 19.3%(47조7천억원) 증가했다. 2019년 증가율 2.8%(6조8천억원)의 7배 수준이다. 업종별로는 도·소매업에서 15조원(19.3%) 증가했고, 제조업(6조3천억원), 숙박·음식점업(3조7천억원), 수리·기타서비스업(2조2천억원) 등의 순으로 부채 증가액이 컸다.
매출과 영업이익 급감이 부채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사업체당 매출액은 2억2400만원으로 전년보다 1100만원(4.5%) 감소했다. 사업체당 영업이익은 1900만원으로 전년보다 1400만원(43.1%)이 줄어 거의 반토막 났다. 특히 예술·스포츠·여가업(-85.2%), 교육서비스업(-66.4%), 숙박·음식점업(-56.8%) 등에서 영업이익은 절반 이상 줄었고, 도·소매업(-48.7%)과 제조업(-22.6%) 등도 영업이익 감소율이 만만치 않았다. 양동희 통계청 경제통계기획과장은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숙박·음식업과 도소매업은 물론 의류 등 제조업까지 대부분의 소상공인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어려움에 정부도 소상공인을 수차례 지원했지만 부채 증가액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지난해 4차례 추경 가운데 소상공인 지원금이 담긴 것은 3차 추경부터였다. 3차 추경에는 긴급고용안정지원금으로 4천억원, 4차 추경에는 새희망자금으로 3조3천억원이 편성됐다. 지난해 연말에는 다음해 예비비와 예산을 당겨 4조1천억원 규모의 버팀목자금을 마련해 올해 초에 지급했다. 이를 다 합치면 7조8천억원으로, 부채 증가액(47조7천억원)의 6분의1 수준이다.
아울러 저금리 대출 등 정부의 금융지원도 있었다. 지난해 금융지원으로 5조2천억원, 재기를 돕기 위해 1조5천억원을 각각 지원했다. 하지만 대부분 원금을 갚아야 하는 지원이어서 소상공인에게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이번 조사에서도 소상공인들은 재난 대응에 필요한 정책(복수응답)으로 보조금 지원(67.7%)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융자확대(33.0%), 사회보험료 완화(21.5%) 등이 뒤를 이었다. 이아무개 대표는 “코로나19로 올해는 매출이 아예 없어, 대출을 더 늘릴 수 있는지 알아 보고 있다”며 “정부가 방역지원금으로 100만원을 준다지만 2년 버틴 피해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말했다.
지난해 소상공인 종사자 수는 557만3천명으로 87만1천명(13.5%) 줄었다. 2019년에는 전년보다 12만3천명 늘었었다. 업종별로는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에서 각각 31만3천명, 25만2천명이 줄면서 전체 감소분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종사자 수는 급감했지만 소상공인 사업체 수는 290만2천개로 13만1천개(4.7%) 늘었다. 2019년 증가 규모(3만1천개)보다 훨씬 많았다. 특히 20대 이하와 30대 연령층에서 각각 11만3천개, 3만7천개의 사업체를 창업했다. 창업 동기는 ‘자신만의 사업을 경영하고 싶어서’(64%), ‘수입이 더 많을 것 같아서’(27.6%) 등이 주였다.
올해도 코로나19가 계속돼 소상공인들의 피해는 더욱 커졌고, 내년에는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 등으로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은 “코로나19로 소상공인들의 경영 환경이 나빠져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위기가 심화됐다”며 “내년에는 코로나19 뿐만 아니라, 물가는 오르는데 경쟁이 심해 판매가를 올리기 어렵고 부채가 늘었는데 금리마저 올라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상공인 손실보상을 더 확대하고, 소비쿠폰 등 내수 진작책은 물론 대출 상환 부담을 경감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며 “아울러 안정적으로 폐업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상공인들은 경영 애로 요인(복수 응답)으로 경쟁 심화(38.3%)를 가장 많이 꼽았다. 상권쇠퇴(37.6%), 원재료비(28.7%), 방역조처(21.0%) 등이 뒤를 이었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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