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무역수지 악화 원인의 78%가 에너지 가격 상승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올해 무역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려면 다른 모든 조건은 동일하다고 가정할 때 연평균 유가가 지금보다 27달러가량 더 급락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유가 급락이 없는 한, 당분간 무역적자가 역대 최대 수준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대외 불확실성 확대 등으로 경상수지 변동성도 함께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한국은행은 6일 펴낸 ‘최근 무역수지 적자 원인 및 지속 가능성 점검’ 보고서에서 “최근 무역적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수입 급증이 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국내 수출입 구조 변화도 무역수지 약화 요인으로 일부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올해 1∼8월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는 247억2700만달러 적자로, 1956년 무역 통계 집계 이후 최대 적자액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흑자(206억6900만달러)에 비하면 453억9600만달러나 감소했다.
한은은 원자재 등 수입단가 상승이 무역수지를 깎아먹은 금액이 867억달러라고 짚었다. 여기에 수출제품 단가 상승분(395억달러)을 반영하면 무역적자 453억달러가 된다. 수출 물량 증가에도 수입 가격이 급등하며 수지가 대폭 악화됐다는 의미다. 품목별로는 에너지·석유제품의 단가 상승이 지난해 대비 올해 무역수지 감소액의 78%(353억달러)를 차지하는 것으로 계산됐다. 윤용준 한은 조사국 차장은 “올해 원자재 가격 수준은 직전 고유가 때인 2011∼2013년과 비슷하지만, 에너지 수입 물가 상승 속도는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네번째로 빠르다”라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뿐 아니라 ‘수출 효자’였던 휴대폰·디스플레이 등 주요 품목의 수출 둔화, 반도체 제조 장비 등 자본재와 중간재 수입 확대 등도 무역수지 악화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무선통신·디스플레이 품목의 무역흑자는 과거 고유가 시기인 2011∼2013년 연평균 504억달러에서 올해 200억달러(연간 환산 기준·추정)로 쪼그라들었다.
국내 제조업체의 생산 기지 해외이전도 무역수지엔 부정적이다. 무역수지는 우리 기업이 세관에 수출 통관 신고를 하고 관세선을 통과하는 재화를 수출로 집계하는 까닭에, 국내 기업이 해외 가공·중계 무역 등을 통해 국외로 수출하는 재화는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가공·중계 무역을 통한 수출액은 경상수지(국제수지계정)에 반영된다.
한은은 만약 국제 유가가 연평균 10달러 내리면 연간 무역수지는 93억달러 개선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올해 1∼8월 누적 무역적자가 247억달러인 점을 고려하면 올해 평균 유가가 지금보다 최소 27달러 이상 내려야 적자를 면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은은 “올해 하반기 이후 유가 전망과 글로벌 경기 여건을 감안하면 올해 무역수지 적자는 역대 최대 수준이 될 전망”이라며 “경상수지의 경우 무역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의 해외법인 생산을 위한)무통관 수출 확대, 외국에서 받은 투자 배당금·이자 등 본원소득수지 흑자 등으로 연간 흑자 기조가 이어질 전망이지만, 당분간 월별로는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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