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400원 턱밑까지 치솟으면서 국내 산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일부 수출기업들은 원화가치 하락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달러로 원자재를 사들여 제품을 만드는 대다수 기업들은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세계 주요국 통화가 모두 달러 대비 약세여서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 가격 경쟁력을 온전히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악재다.
가장 걱정이 큰 곳은 항공업계다. 유류비·리스료 등을 달러로 지급하는 항공사들은 환율이 오르는만큼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환율이 10원 조정될 때마다 대한항공은 350억원, 아시아나항공은 284억원의 외화 환산 손익이 발생한다. 이미 고환율 여파로 지나 2분기 대형 항공사의 외화 환산 손익은 손실로 전환됐는데, 환율이 더 오르면 손실 폭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대한항공은 원화 고정금리 차입을 더 늘리고 차입 통화를 엔화 등으로 다변화해 달러 차입 비중을 줄이고 있다. 또한 화물사업 호조와 외화수익 증가로 환차손을 일정 부분 방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행업계는 비용 증가보다 이제 막 정상화하고 있는 국외여행 심리가 다시 얼어붙을까 걱정이다. 참좋은여행 관계자는 “여행 경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항공료는 원화로 결제하고 30% 정도가 호텔 숙박비 등 지상 비용이다. 몇만원 정도의 상승 요인이라 영향이 크진 않다. 유럽 상품이 40% 정도인데, 유로화도 동반 약세여서 큰 타격은 없다”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이 14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미국발 물가 충격의 여파로 장중 달러당 1395.5원까지 치솟았다. 이날 환율은 전날보다 17.3원 오른 1390.9원에 마감됐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자동차 업계는 완성차 회사냐, 부품사냐에 따라 고환율 여파가 다르다. 수출 비중이 높은 완성차 업계는 고환율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지만, 원자재를 수입해야 하는 부품사는 환율이 오를수록 손해가 커지는 구조여서 걱정이다. 원자재 구매 비용 상승분을 즉시 납품 단가에 반영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미래자동차학부)는 “완성차 업체는 환율이 오르면서 큰 이득을 보고 있는데, 해외에서 원료를 조달하는 부품사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완성차 업체들이 오른 비용을 보전해주지 않는다. 업계 차원에서 환율 효과에 따른 이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체 등 평소 외화로 수출입 결제를 하는 기업들은 환율 변동성에 따른 영향이 크지 않은 편이다. 환율 변동에 따라 수입 비용 증가분을 수출에 따른 수익 증가분이 상쇄하기 때문이다. 국내 철강업계는 연간 1억t 이상의 철광석 원료탄을 수입하지만, 동시에 수출량도 세계 4위다. 포스코 관계자는 “시나리오별 전망을 통해 환율 변동성 확대가 경영활동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 평소 철강제품을 수출해 벌어들이는 외화로 유연탄과 철광석 등 주요 원료를 사들이는 상시적인 ‘내추럴 헤지’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외 매출 비중이 높은 국내 게임사들은 ‘고환율 수혜’를 기대한다. 지난 2분기 기준 국외 매출 비중이 85%인 넷마블은 북미 매출이 절반에 육박해 환차익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크래프톤·펄어비스 등도 국외 매출 비중이 80%를 넘어 외화 환산 과정에서 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반대로 지식재산권(IP)료 지급 등 해외사업 비용이 늘어나는 건 부담이다. 넷마블 관계자는 “마블 퓨처파이트 같이 해외 지식재산권 비용을 달러로 지급하거나 해외기업 인수 때 차입한 대출금 이자 지급 과정에서 환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달러 빚이 많은 기업들은 이자와 상환 부담이 증가하고, 대규모 해외투자의 재무적 리스크 또한 커지게 된다. 고환율이 장기화하면, 대기업들도 내년 경영계획을 세울 때 투자계획을 재조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회승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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