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1차 협상 결과
개성공단 한국산 인정 등 우리 요구 철저히 외면
신금융서비스·투기자본 투자 인정 등 미국만 이득
개성공단 한국산 인정 등 우리 요구 철저히 외면
신금융서비스·투기자본 투자 인정 등 미국만 이득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1차 본협상이 10일(한국 시각) 닷새간의 일정을 마무리했지만, 한국은 사실상 빈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한국은 처음부터 요구할 만한 게 있는 협상 분야가 4개에 그친 데다가, 그나마 협상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반면 미국은 자국에 유리한 17개 분야에서 공세를 펴 한국의 양보를 받아내는 성과를 냈다. 한국정부가 본협상 첫 단추부터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함에 따라 앞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 추진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될 전망이다.
한국 요구는 외면=한국은 원산지 분야 협상에서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을 줄곧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번 협정의 범위는 (북한이 아닌) 한-미간이라는 논리와 함께 북핵 등 정치적 걸림돌을 거론하며 외면했다. 김종훈 협상 수석대표는 이날 브리핑에서 “개성공단 문제는 방법과 시기를 잘 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일단 협정부터 맺은 뒤 개성공단 문제는 나중에 논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섬유 분야도 한국은 원산지 기준 완화와 조기 관세 철폐를 요구했지만 미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요구가 관철될 경우 섬유류 대미수출이 20% 가량 늘 것으로 한국은 기대하고 있지만, 미국은 되레 긴급수입제한조처 도입을 주장했다. 한국은 대미수출에 악영향을 준 반덤핑관세와 상계관세를 미국이 남발하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주요 쟁점으로 다뤘으나 긍정적인 답변은 듣지 못했다. 한국산 선박의 미국 연안 운항권 요구도 미국은 손사레를 쳤다. 한국이 얻어낸 가시적인 성과로 꼽는다면 미국이 수입품에 부과하는 물품취급 수수료 폐지를 검토하겠다는 것인데, 대미 공산품 수출액의 0.21% 수준이다.
미국에 유리한 협상=한-미는 자국에는 없는 상대국의 파생금융상품인 신금융서비스를 허용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또 상대국 현지에 법인이나 지점을 설립하지 않고도 금융상품을 취급할 수 있는 국경간 거래도 개방하기로 했다. 두 나라 모두 상대국에 진출할 수 있지만, 금융서비스 강국인 미국에 더 유리한 조항인데다, 우리로서는 개방에 따른 고용증대를 기대하기도 힘들어졌다.
일반 서비스 분야에서도 한국은 현지에 지점·대행사 없이도 영업을 할 수 있게끔 국경간 서비스를 허용했다.
정부는 또 투자분야에서 △투자의향 단계부터 국내기업과 동일한 대우 △현지인과 현지부품을 써야하는 의무 부과 금지 △투자자의 재산 수용 때 보상 △투자자-국가간 분쟁해결 절차 △핫머니·지적재산권 등의 투자개념 인정 등에 합의했다. 국내경제에 교란요인이 될 수 있는 핫머니같은 투기자본마저 투자로 대우받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자동차 분야는 애초 미국의 요구로 만들어졌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배기량 기준 세제를 변경해달라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 “부과 기준을 가격이나 연비로 바꾸는 것을 내부적으로 검토중이다”고 말했다.
의약품 분야는 아직 양국간 이견이 많지만, 한국은 특허청과 식약청간의 특허권 정보교환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긍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서 특허 출원을 하는 동안 제너릭 제품(복사약)이 신제품으로 신청돼 출시되는 경우가 있어 이를 막아달라”고 주장해 왔다.
한국은 또 다국적제약사가 주로 취급하는 전문의약품의 인터넷 등을 통한 광고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건강보험의 재정을 약화시키지 않으면서도 미국의 ‘시장접근’ 요구를 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농업과 지적재산권은 워낙 미국이 막강한 분야여서 앞으로 한국이 일방적으로 양보하지 않고 절충점을 찾는다 해도 미국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밖에 동식물검역, 경쟁, 노동, 환경, 분쟁해결·투명성 분야에서도 공세를 펼쳤다.
워싱턴/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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