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인천 중구 게이트고메코리아에서 협력업체 직원들이 기내식 용기에 음식을 나눠 담는 일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전 20명 이상이 함께 일하던 이 공정에는 이날 2명만 출근했다. 김윤주 기자
기내식 납품회사 게이트고메코리아는 지난 1월까지만 해도 하루 평균 3만2천개 기내식을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1~2개월 동안엔 하루 평균 생산량이 300~500개로 뚝 떨어졌다. 대형 여객기 A380이 만석일 때 기내식 950개가 들어간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하루에 비행기 한 대도 다 채우지 못하는 생산량이다. 기내식용 불고기만 보면, 하루 생산량이 1.1톤에서 40㎏으로 95% 남짓 줄었다. 또 다른 기내식 납품업체 엘에스지(LSG)스카이셰프코리아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지난해 12월까지 하루에 기내식 1만4000개가량을 생산하다 현재는 300개 정도만 만든다. 수개월 전 주문해 받은 식재료 대부분을 버리고 있다.
■ 운항 줄자 직격탄 맞은 지상조업사
코로나19 여파로 기내식 납품, 기내 청소, 수하물 운반 등을 하는 항공 지상조업사들의 어려움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운항 편수가 줄자 일감이 자연스레 줄어든 탓이다. 국토교통부 항공정보 포털 시스템을 보면, 지난 1월 6만2497편이었던 국내·국제선 운항 편수는 2월 4만5819편, 3월에는 1만8379편으로 줄었다.
생산과 매출이 줄자 이들 업체의 직원들도 일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1월 말까지 게이트고메코리아 직원들과 협력업체 10여 곳 직원들은 모두 합쳐 1084명이었다. 하지만 이달 들어 803명만 남았다. 권고사직 바람이 거셌다는 얘기다. 협력업체 중 한 곳은 전 직원이 240명에서 16명으로 줄었다. 지난 23일 출근 직원은 8명뿐이었다.
게이트고메코리아의 다른 협력업체 ㅋ사도 지난 2월 86명이었던 직원 가운데 31명이 권고사직을 당했다. 이 업체는 기내 안대, 헤드폰, 화장실 용품, 음료 등을 용기에 담는 일을 맡고 있다. 이곳에서 4년간 일하다 지난 2월29일 사직서를 쓴 ㄱ씨(56)는 지난 23일 회사를 찾아 대출에 필요한 근로소득 원천징수영수증을 받았다. 그는 월급으로 200만원 정도를 손에 쥐었는데, 현재는 실업급여 168만원을 받고 있다. 이사와 아들 결혼식을 앞둔 그는 “전세 만기일이나 결혼식 날짜는 바꿀 수 없다. 목돈 들 일은 많은데 갑자기 소득이 줄어 너무 힘들다”고 울상을 지었다.
23일 인천 중구 게이트고메코리아의 신선가공품 보관소가 텅 비어 있다. 김윤주 기자
권고사직 이후 남은 55명 가운데 2명이 더 그만뒀고, 현재는 18명이 격일제로 일한다. 나머지(35명)는 정부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아 유급휴직 중이다. 지난 23일 출근자는 딱 한명이었다. 이곳 대표 ㅂ씨는 <한겨레>와 만나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90% 가까이 줄어 인건비를 줄여야 했다. 추가 권고사직까지 고려 중”이라고 했다. ㅂ씨는 지난달 10일 시중은행에서 대출 2억원을 신청했는데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듯 항공 지상조업사 대다수는 인건비 감축에 나서고 있다. 한국공항의 기내 청소 협력업체 한성엠에스, 이스타항공의 지상조업 담당 자회사 이스타포트 등 일부는 폐업을 준비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영종특별지부는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지난달 말 현재 인천공항 노동자 7만여명 중 휴직자와 퇴직자가 2만5000여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 인력 감축 칼바람에 노사 갈등도
아시아나에어포트 협력업체로 기내 청소와 수하물 분류 작업을 담당하는 케이오(KO)는 노사 갈등이 한창이다. 지난 10일 일부 직원에게 다음달 14일자로 해고를 통보한 게 계기였다.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거나 무급휴직에도 동의하지 않은 8명이 해고 통보 대상이었다. 직원 500여명 중 120명은 희망퇴직을, 나머지 300여명은 무기한 무급휴직에 동의했다.
해고 통보자 박종근(54)씨는 케이오에서 1년 10개월 동안 기내 오물 처리 일을 했다. 기본급 207만원에 연장근무를 꽉 채우면 300만원까지 받는 달도 있었다. 지난 3월에는 8일간 무급휴직을 해 170만원을 받았다. 인천 남동구에서 혼자 사는 그는 전세자금 대출과 제2금융권 대출이자 등을 모두 합해 고정지출이 월 150만원 정도 된다. 박씨는 “실업급여를 받으면 몇달 동안은 괜찮겠지만 그다음에는 막막하다”고 했다.
10년 동안 기내 청소를 한 ㅇ씨(56)도 해고 통보자 중 한명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장거리 노선 비행기에 담요 넣는 작업을 하다 왼쪽 두번째 손가락이 골절돼 철심을 박았다. 그 후 4개월간 일을 못 했다. 그러다 지난 3월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해 무급휴직에 들어갔다. 휴직 뒤 ㅇ씨는 매달 100만원씩 붓던 적금을 깼다. 한 달에 200만원가량 벌던 남편도 근무시간이 줄면서 급여가 150만원으로 줄어 생활비가 모자랐다. 그는 “손가락이 나으면 돌아갈 일터가 있다는 게 기뻤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잘릴 줄은 몰랐다”며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ㅇ씨와 같은 일을 한 ㅊ씨(58)도 “이 회사에서 일한 7년 동안 병가 신청 한 번 안 했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며 “단지 희망퇴직이나 무급휴직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니 속이 타들어간다”고 했다. 그는 “이력서에도 정년까지 일해서 노후 준비를 하겠다고 썼다”며 “큰 것 안 바라고 계속 일해서 정년퇴직을 하고 싶다는 게 내 꿈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