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 정책금리를 0.50%포인트만 올리며 올해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연방준비제도는 대신 궁극적으로 5%대 초반까지 금리를 올릴 것을 시사하며 통화 긴축 장기전을 예고했다. 내년 연준의 금리 인하를 점치는 시장과는 시각 차가 크다. 연준과 시장 간의 괴리가 확대됨에 따라 연준의 행보와 금융시장 여건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더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의 정책 방향성도 예단하기 어려워졌다.
■ 연준 “경기 아직 괜찮아…금리 5.25%까지”
미 연준은 14일(현지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연방기금금리 목표범위를 연 3.75~4.00%에서 4.25~4.50%로 0.50%포인트 올렸다고 밝혔다. 앞서 4번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밟은 끝에 금리 인상 폭을 축소한 것이다. 이번 결정은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누적된 통화긴축, 통화정책이 경제 활동과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주는 데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연준이 예상하는 정책금리 고점은 5%대 초반으로 상향 조정됐다. 속도는 조절하겠으나 최종적으로는 금리를 더 많이 올리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날 연준이 발표한 경제 전망을 보면, 위원들의 내년 말 정책금리 전망치(중간값)는 5.00∼5.25%다. 지난 9월(4.50~4.75%)에 비해 0.50%포인트 뛴 것이다. 5.25~5.50%(5명)와 5.50~5.75%(2명) 등 5%대 중반을 제시한 위원들도 있었다. 5% 아래를 예상한 위원은 2명(4.75~5.00%)뿐이었다.
이는 내년에도 고물가 국면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반영된 것이다. 위원들은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상승률이 내년 4분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3.5%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9월(3.1%)보다 전망이 어두워진 것으로, 금리를 더 많이 올려도 물가를 잡기 힘들 것이라고 본 셈이다. 3.5%는 연준의 중장기 목표(2.0%)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연준은 특히 임금 오름세가 서비스 물가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상품 물가의 오름세는 둔화하고 있고 집세도 내년에는 주춤할 것으로 보이나, 서비스 물가는 안정을 되찾기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동시장이 계속 탄탄한 모습을 보이면서 서비스 물가에 반영되는 임금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은 “노동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감안하면 (임금이) 내려오려면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이라며 “우리가 높은 금리를 유지해야 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실제로 연준은 내년 4분기 실업률 전망치를 4.4%에서 4.6%로 소폭 상향 조정하는 데 그쳤다. 금리를 5%대까지 올려도 노동시장 여건이 더 크게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내년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년 동기 대비)은 1.2%에서 0.5%로 대폭 낮췄으나 ‘경기 침체론’에는 선을 그었다. 파월 의장은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자연 실업률이 높아졌다고 믿는다”며 “실업률 전망치가 자연 실업률보다 높은 수준인지 불확실하다”고 했다.
■ 연준 못 믿는 시장, 오히려 금리 전망치 내렸다
시장에서는 180도 다른 분위기가 읽힌다. 이날 오후 3시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를 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서 전망한 내년 12월 정책금리는 4.30∼4.55%(확률 가중평균)를 기록했다. 연준 발표 전날(4.53∼4.78%)보다 오히려 내려왔다. 올해 7월 역전된 미국 국채 장단기 금리(10년물-2년물)도 최근까지 계속해서 역전 폭을 키워오고 있다. 내년 경기가 기존 예상보다 더 나빠져 연준이 금리를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연준이 예고한 금리 고점이 아직 시장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준의 행보는 물론 금융시장의 향방도 예측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원-달러 환율은 15일(한국시각) 서울 외환시장에서 전날보다 6.8원 오른 1303.1원에 마감했다. 이날 최대 1.25%포인트로 벌어진 한-미 정책금리 역전 폭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모습이지만, 내년 역전 폭이 더 커지면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최근 안정세를 찾은 시장금리의 추이도 통화정책 기조나 경기의 영향으로 반전될 수 있다.
한은의 통화정책도 이런 변수들의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지난달 한은은 기존 전망대로라면 기준금리 고점은 3.50%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바 있다. 이승헌 한은 부총재는 이날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국내 금융·외환시장에서도 미 연준 정책금리의 최종 수준 및 지속기간에 대한 기대 변화, 주요국 환율의 움직임 등에 따라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 있다”며 “환율, 자본유출입 등 국내 시장의 상황 변화를 예의주시하겠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워싱턴/ 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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