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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 임대인’ 숨지고 7개월…“이사 못 가고 이자 월100만원”

등록 2023-05-04 08:00수정 2023-05-04 08:39

강서구 ‘빌라왕’ 피해자들
보험가입자도 변제 못 받고
4순위 상속권자 찾아 백방으로

임차권 등기 안 되는 탓
직장·학교 멀어도 이사 못 가
“새벽 쿠팡 알바로 이자 감당”
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숨진 이른바 ‘빌라왕' 김아무개씨 사건 피해 임차인들이 지난해 12월27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피해 상황을 호소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숨진 이른바 ‘빌라왕' 김아무개씨 사건 피해 임차인들이 지난해 12월27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피해 상황을 호소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전세사기 당하고 집에서 쫓겨나가는 것도 문제지만, 저희처럼 이사를 가야 하는데도 경매도 안되고 보증보험 변제도 안되어서 이사를 못 가는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김OO(임대인)이 숨진지 7개월째인데 얼마나 더 이렇게 참고 버텨야 하는지를 모르겠어요.”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ㄱ씨(34)는 수도권 일대에 빌라 1139채를 보유했다가 숨진 이른바 ‘빌라왕’과 전세계약을 했던 피해자다. 전세계약 당시 등기부등본에 선순위 저당권도 설정돼 있지 않았고, 임대인이 체납한 종합부동산세가 있는지는 알 수조차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집주인이 숨졌다는 소식을 들은 뒤 전 재산과도 같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을 찾아 백방으로 뛰고 있다. 벌써 7개월째다.

전세금반환보증보험 미가입자인 ㄱ씨로선 최선의 방안은 살고 있는 집을 경매로 넘겨 선순위 배당을 받고 보증금을 일부라도 회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쯤에나 경매에 집을 넘길 수 있을지를 알 수가 없다. 임차 주택에 대한 경매신청을 하려면 임차권 등기설정을 마친 상태여야 하는데, 임차권 등기 신청의 전 단계인 계약해지 통보의 상대방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임대인 김씨는 숨졌고, 김씨의 민법상 3순위 상속권자까지 상속포기 절차를 완료했지만 마지막 4순위 상속권자는 국외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을 뿐 사는 곳이나 연락처를 알 수가 없다.

ㄱ씨는 “다른 도리가 없어 4순위 상속권자를 상대로 공시송달(법원이 게시판이나 관보에 재판 관련 서류를 올리고서 그 내용이 당사자에 전달된 것으로 간주)을 계속하고 있는데, 공시송달 반복만으로는 법원이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을 받아주지 않고 보정명령을 내리고 있다”며 “정부나 법원이나 나라밖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4순위 상속권자를 우리보고 찾아오라고 하는데 미칠 노릇”이라고 말했다. ㄱ씨는 이번 전세계약이 끝나면 경기도 동탄에 있는 직장 주변으로 이사를 갈 계획도 뒤로 미뤄둔채 하루 5시간 가까이를 출퇴근에 쓰고 있다.

전세금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한 피해자들 사정도 마찬가지다. 보증보험 대위변제 청구를 하기 위해서도 김씨의 4순위 상속권자를 찾아내 임차권 등기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인천 부평에서 살고 있는 피해자 ㄴ씨(31)는 “보증보험 가입자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대위변제 절차를 다 밟으면 보증금을 반환받는다는 이유로 정부가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전세계약 때 한달 40∼50만원이던 이자가 최근에는 6%대 금리로 바뀌며 100만원을 훌쩍 넘겼는데도 저금리 대환대출 지원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ㄴ씨 역시 지금 집에 살던 중 충남 당진의 한 대학에 합격해 전세계약이 끝나면 학교 근처 자취방을 얻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15일 전세계약이 만료된 뒤에도 대항력 유지를 위해 이사 계획을 세울 수 없었고, 이 때문에 부평에서 당진으로 등하교를 하면서 뛰어오른 이자비용을 감당하고자 심야 배송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ㄴ씨는 “학교도 다녀야 하고 한달 100만원 이자 낼 돈도 벌어야 하는데,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겠는 4순위 상속인을 어떻게 찾으러 다니느냐”고 말했다.

임대인이 잠적하거나 숨진 경우 임차권 등기 명령 송달이 어려워져 등기 설정을 할 수 없게 되는 문제는 진작부터 지적돼 왔다. 이에 임대인에게 임차권 등기명령 결정이 고지되기 전에도 등기가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조항을 손 본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지난 3월30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어선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 지시에 따라 지난해 12월20일 국토교통부와 법무부 등으로 꾸려진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 법률지원 티에프(TF)’가 내놓은 제도개선 방안에 따른 입법조처였다. 그러나 이 법은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로부터 시행된다는 부칙이 붙었다. 법원의 ‘임차권등기명령 절차에 관한 규칙’을 정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한달 한달을 숨막히게 버텨야 하는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공공이 피해 임차인의 보증금반환 채권을 매입한 뒤 경매에서 대신 채권을 청산하는 야당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피해자들이 개별적으로 모든 절차를 밟도록 하지 말고, 공공이 대신해서 절차를 밟자는 것이다. 다만 이런 경우에도 공공이 보증금 채권을 어느 정도의 할인가에 보증금채권을 매입하는 것이 적절한지가 난제일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피해 임차주택을 낙찰받고 공공임대주택으로 제공하는 방안도 빌라왕 피해자처럼 선순위 임차인인 경우에는 적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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