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우리가 일본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지 70돌을 맞는 해다. 19세기 이후 한반도는 미국·일본 등 해양세력과 중국·러시아 등 대륙세력이 패권을 다투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주변 강대국들의 역학관계에 큰 영향을 받아왔다. <한겨레>는 5회에 걸쳐 한반도처럼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낀 채 풍파를 견디며 발전을 모색해온 나라들의 경험에서 역사적 교훈과 미래 전략의 시사점을 찾아보려 한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의사당 광장은 이 나라를 상징하는 명소다. 탁 트인 광장 정면에는 하얀 주랑과 녹색 돔이 조화를 이룬 루터교 성당이 있다. 광장 오른쪽 건물은 제정러시아 통치 시절(1809~1917년) 자치 의사당이었다가 지금은 총리 집무실이 있는 정부청사다. 광장 왼편엔 헬싱키대학이 있다. 광장 앞 중앙로 건너편에는 상가가 자리 잡았다. 광장을 중심으로 핀란드의 정치, 종교, 교육, 경제가 펼쳐진 모양새다.
광장 한복판에 우뚝 선 청동상이 눈길을 끈다. 19세기 핀란드 대공국을 통치했던 제정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재위 1855~1881년)의 동상이다. 현지 관광 가이드인 타냐 헤이키넨은 “핀란드에선 1917년 독립 이후 줄곧 이 동상의 철거 또는 이전 논란이 일었으나, 역사의 일부로 기억하자는 뜻으로 보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광화문광장 한복판에 버젓이 일본왕의 동상이 서 있는 셈이다. 이 동상이 핀란드의 현실주의적 대외정책, 러시아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의사당 광장에 있는 제정러시아 시절 차르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은 핀란드와 러시아의 ‘가깝고도 먼’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헬싱키/조일준 기자
핀란드는 서쪽으로 스웨덴과 460㎞,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1340㎞에 이르는 긴 국경을 접하고 있다. 핀란드에 러시아는 좋든 싫든 숙명처럼 공존해야 할 이웃 강대국이다. 러시아는 독일, 스웨덴에 이어 핀란드의 3대 교역국 중 하나지만, 동시에 현재 핀란드 최대의 잠재적 안보 위협이기도 하다.
핀란드는 그러나 러시아와 대립하는 서방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에 아직까지 가입하지 않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옛소련이 무너진 1991년까지 냉전 시기 내내 철저한 정치적 중립을 지켜온 연장선이다. 약소국이 주변 강대국들 중 어느 쪽도 편들지 않는 전략을 일컫는 표현인 ‘핀란드화’(Finlandization)란 단어도 핀란드의 이런 중립적 외교안보 정책에서 비롯했다. 핀란드는 중립 노선에 힘입어 1975년 동-서 두 진영이 유럽의 안보협력을 약속한 ‘헬싱키 협약’의 산실이 되기도 했다.
스웨덴에 300년, 러시아에 100년…“더이상 외세 지배는 없다”
기자가 핀란드 현지를 취재중이던 지난달 18일 헬싱키 도심에선 500여명이 시위행진을 했다. 핀란드 총선을 하루 앞둔 이날 좌파 정당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대거 참여한 이 시위는 유럽연합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한 범대서양교역투자동반자협정(TTIP) 추진을 반대하고 ‘밀실 협상’에 항의하는 시위였다. 정치와 안보 문제에 대한 목소리들도 함께 터져나왔다. 나이 지긋한 노인과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까지 참가한 시위대는 흥겨운 음악에 맞춰 발걸음을 옮기면서 “민주주의는 매매 대상이 아니다”, “(핀란드의) 나토 가입 반대” 같은 구호를 외쳤다.
호텔 종업원이며 소수정당 당원인 한 청년은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면 러시아와 분쟁이 생길 때 나토군에 군수·편의를 제공하고 핀란드의 공항까지 개방하게 되는데, 이건 스스로 화를 부르는 꼴”이라고 말했다. 그는 핀란드가 지난 수십년 동안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는데, 지난해 유럽연합의 러시아 경제제재 결의에 핀란드도 가세하면서 중립 원칙을 상실했다고 비판했다.
핀란드에서 ‘나토에 가입하자’는 의견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군사동맹에 참여하지 않는 대신 주변국과의 국방협력은 강화하는 추세다. 지난달 9일 핀란드를 비롯해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등 노르딕 5개국 국방장관은 공동성명을 내어 “러시아로부터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방위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강력한 이웃’ 러시아와 공존 선택
서방 군사동맹 ‘나토’에 가입 않고
국방비 늘리며 주변국과 협력강화
냉전 시기에도 ‘정치적 중립’ 지켜
러시아, 독일·스웨덴 이어 3대 교역국
유하나 아우네슬루오마 헬싱키대 유럽학네트워크 소장은 “핀란드인들은 설령 나토 가입을 검토하더라도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며 “갈등이 있는 상황에서 그런 논의는 오히려 국익에 해가 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보수당 일부 정치인을 뺀 대다수 정치인들은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나토 가입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대신 거의 모든 주요 정당이 국방비 지출 증대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헬싱키 앞바다에는 수오멘린나 섬이 있다. 서로 인접한 작은 섬 5개를 하나로 연결한 수오멘린나는 섬 전체가 천혜의 해상 요새다. 300년간 핀란드를 지배한 스웨덴이 18세기 중반에 이곳에 군사기지로 요새를 구축했다. 이 요새는 건설 반세기 만에 새로운 점령자 러시아로 주인이 바뀌었다. 1808~1809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했다가 패퇴했고, 프랑스의 동맹이었던 스웨덴은 러시아에 이 섬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이후 1917년 핀란드 독립까지 100년 넘게 수천명의 러시아군이 주둔했다. 지금도 곳곳에 대포와 무기저장고, 병영과 교회가 들어서 있는 이 섬은 이제 관광명소이자 역사교육의 현장이 되고 있다.
러시아가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이겨 핀란드 지배권을 양도받기로 한 지 3년 뒤인 1812년, 당시 스웨덴 황태자였던 카를 14세가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와 최종 협정문서에 서명하기 위해 투르쿠에서 만난 것을 재연한 조각상.
헬싱키에서 차로 4시간 거리의 옛 자치수도인 투르쿠를 가로지르는 아우라강 강변 산책로에는 주변 강대국에 시달려온 핀란드의 치욕적인 기념물이 서 있다. 러시아가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이겨 핀란드 지배권을 양도받기로 한 지 3년 뒤인 1812년, 당시 스웨덴 황태자였던 카를 14세가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와 최종 협정문서에 서명하기 위해 투르쿠에서 만난 것을 재연한 조각상이다.
동과 서 양쪽으로 국경을 맞댄 러시아와 스웨덴이라는 두 강대국이 핀란드 땅에서 핀란드의 통치권을 이양하는 기막힌 현실을, 핀란드인들은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2012년에 협정이 이뤄진 건물 바로 앞에 동상으로 만들어 기억하고 있다. 다시는 외국의 지배를 받지 않겠다는 핀란드의 의지가 이 조각상에 담긴 듯했다. 핀란드는 중립 외교와 자주국방을 그 길로 선택했다.
헬싱키·투르쿠/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