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사이에서] 쿠지니아르 폴란드 안보보좌관 인터뷰
러 적대적 행동에 안보 위협
군사적 대처 안할 수 없어
러 적대적 행동에 안보 위협
군사적 대처 안할 수 없어
“냉전체제가 무너진 1990년대 초에 폴란드에서도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해 동-서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자는 주장이 있었는데, 발전적인 논의가 진전되지는 못했다.”
로만 쿠지니아르(62) 폴란드 대통령 안보보좌관은 “지금 유럽의 안보 현실에선 폴란드의 중재가 불가능하다”면서도 “앞으로 역내 상황이 안정되면 폴란드가 유럽의 중재자 구실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달 <한겨레>는 바르샤바의 대통령궁에서 쿠지니아르 보좌관을 만나 폴란드 외교안보 정책의 방향과 배경을 들어봤다. 쿠지니아르 보좌관은 바르샤바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바르샤바대 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유엔 인권위원회 폴란드 대표를 지내는 등 저널리즘과 인권에도 관심이 깊다. 폴란드 외교부 전략·외교정책기획국장 재임(2000~2002년) 때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전 참여에 반대해 사임했고, 2005년 폴란드 국제관계연구소 소장 때에도 정부의 대외정책을 둘러싼 의견 충돌로 해임되는 등 합리적 소신파로 평가받는다.
-폴란드가 자국 영토에 미국의 미사일방어(MD·이하 엠디) 기지를 설치하려는 이유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 개념은 과거 조지 부시 정부의 구상과 현재 버락 오바마 정부의 구상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과거에는 미-러 군사력 균형이 진짜 목적이었지만 대외적으론 이란과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건 폴란드를 포함한 중부 유럽의 안보와는 무관했다. 현재 오바마 정부의 구상은 과거와 달리 ‘유럽 방위’를 강화하기 위한 나토의 방공시스템으로, 미국과 유럽의 협력으로 추진되고 있다. 폴란드가 미국의 유럽지역 미사일 방어 시스템 구축에 참가하는 이유다.”
-폴란드의 미사일 방어 기지가 러시아의 반발로 오히려 안보 위협을 부르는 건 아닌가?
“미국 오바마 정부의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2~3년 안에 폴란드에도 유럽 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일부가 설치될 예정이다. 이는 중단거리 미사일에 대한 방공망으로, 중동과 러시아 등 어느 방향의 위협에도 모두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러시아가 발표한 ‘군사 교리’는 필요시 이웃나라에 대한 군사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제2의 브레즈네프 독트린’이다. 폴란드는 러시아와의 협력을 희망하고 있으나,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하다. 양국관계 개선은 폴란드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관계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러시아의 공격적 정책에 대처하지 않을 수 없다.”
-서방과 러시아의 대립이 풀린다면 강경노선을 주장해온 폴란드가 고립될 가능성은 없나?
“유럽-러시아 관계가 개선될 경우, 폴란드가 유일한 반러시아 국가로 고립될 위험성은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 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과거 폴란드가 거의 유일하게 ‘러시아 위협론’을 주장할 때, 이를 믿지 않던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비로소 폴란드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공동보조를 맞추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시절에는 폴란드-러시아 관계가 좋았는데, 2012년 블라디미르 푸틴의 2기 집권 이후 러시아의 대외정책 변화로 양국 관계가 악화하기 시작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서유럽 국가들도 최근 ‘푸틴의 러시아’에 대한 시각이 바뀌고 있다. 폴란드는 슬라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서유럽의 일원으로 개혁에 성공했고, 우크라이나 등 다른 슬라브 국가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폴란드·리투아니아·우크라이나 공동부대 창설 계획이 구체화하고 있는데?
“오래 전부터 계획해 온 것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과는 무관하다.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및 유럽연합 가입을 지지하는 것은 나토의 설립 근거인 워싱턴조약과 유럽연합의 틀인 리스본조약에 부합한다. 나토와 유럽연합의 확대가 폴란드의 발상이 아니라는 거다. 특히 최근의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서방으로 밀어내는 역설적 효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는 슬라브족의 정체성과 서유럽 문화를 동시에 갖고 있다. 이런 위치를 균형외교와 평화중재자로 활용할 수 없나?
“동유럽 공산권이 무너지던 1980년대말~1990년대초 폴란드에서도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해 동-서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하자는 중재자 역할론이 있었다. 역내 상황이 안정되고 평화로울 땐 그러한 이중성을 활용하여 역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활발한 교류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서방과 러시아) 양쪽 모두가 교량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동의해야 하는 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1989년 이후 폴란드는 러시아와 친선을 위해 계속 노력해 왔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의 적대적 행동으로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금의 러시아는 예측불가능하다.”
-러시아의 정권 또는 정책이 바뀌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는가?
“푸틴 대통령은 앞으로도 10년 이상 러시아를 통치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만들었다. 물론 푸틴의 집권 기간에 러시아가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 과거에도 소련은 사실상 집단통치체제를 유지했다. 하지만, 현재 푸틴의 러시아는 1인 독재체제에 가깝고 아직은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바르샤바/글·사진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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