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셰크 소체비차 폴란드 외교부 안보담당 차관
[강대국 사이에서] ③ 폴란드 레셰크 소체비차 외교차관 인터뷰
얄타회담 뒤 “자국의 국익 결정에 직접 참여헤야” 교훈
얄타회담 뒤 “자국의 국익 결정에 직접 참여헤야” 교훈
“폴란드의 외교안보 정책의 기본 방향은 협력입니다. 첫째, 나토와의 협력, 둘째, 유럽연합과의 협력, 그리고 셋째는, 인접국과의 지역 협력이지요.”
<한겨레>가 지난달 폴란드 바르샤바의 외교부에서 만난 레셰크 소체비차 외교부 안보담당 차관은 자국의 외교안보의 기본 노선이 ‘협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동맹과의 협력’이 지나치게 강조된 외교정책에는 갈등 상대국이나 잠재적 적국과의 대화·협상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아보였다.
-폴란드는 최근 유럽연합 국가로는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동부의 난민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유럽에선 반 이주 정서가 갈수록 강해지는데, 그와 상반되는 결정을 한 배경과 이유는?
“지난 1월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이 독립을 선포한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지역의 폴란드계 주민 178명이 폴란드로 탈출했다. 이는 폴란드 정부가 우크라이나 사태 초기부터 추진해 오고 있는, 해당 지역의 폴란드 국적자와 폴란드계 주민에 대한 지원정책의 하나다. 폴란드 정부는 돈바스 지역에 거주하는 폴란드인들이 신변에 직접적 위협을 겪는 것으로 파악했다. 현재 폴란드 정부는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남아 있는 폴란드인에 대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계속 추진 중이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반발과 경고에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유럽 미사일 방어기지(MD)를 자국에 설치하려 한다. 방어용 무기의 자국내 배치가 오히려 안보 위협을 부르는 것은 아닌가?
“폴란드가 미국의 유럽지역 미사일방어 시스템 구축에 참여하고 미군의 폴란드 영토내 주둔을 지지하는 것은 폴란드 국내에서 강력한 정치적, 사회적 지지를 받고 있다. 폴란드 내 미국의 MD 기지 설치는 나토의 방공시스템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최근 폴란드 동쪽 국경지역의 안보위협이 커지고 있는 분위기에서, 폴란드 사회는 동맹국 군대의 폴란드 영토내 주둔에 호의적인 입장이다.”
-현재 폴란드 외교안보전략의 핵심 목표와 실현 수단은 무엇인가?
“우크라이나 동부의 분쟁 상황이 폴란드 안보정책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것은 국가간 평화공존 원칙과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다. 이는 지역내 안보뿐 아니라, 유럽-대서양 사회 전체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폴란드 안보정책의 우선순위는 나토 회원국으로서의 능동적 활동, 동유럽 지역에서 나토의 강화, 미국과의 협력, 지역내 협력 강화, 유럽연합의 공동안보정책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들 수 있다. 동시에 여러 다자기구 안에서 다양한 상호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폴란드의 외교안보 전략이 획기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없나?
“현재 서방과 러시아의 긴장 상태는 러시아의 불법적인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대한 ‘하이브리드 전쟁’과 같은 러시아의 공격적 정책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서방-러시아간의 관계 개선은 러시아 정책의 전환에 달려 있다. 러시아가 국제법을 존중하고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민스크 휴전 협약을 이행하고, 이웃국의 영토와 독립을 존중해야 한다. 폴란드는 21세기 유럽에서 위협 정책과 무력 사용의 남발을 인정할 수 없다.”
-현재 폴란드의 외교안보전략의 기본틀이 과거 역사적 경험과 관계가 있는가?
“안보 문제에 대한 폴란드의 접근은 역사적 경험,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이 밑바탕이다. 1945년 ‘얄타 회담’의 경험으로, 폴란드는 자국의 국익에 관련된 결정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이로 인해 폴란드는 친서방 성향을 가지게 됐고, 옛소련 붕괴 뒤인 1999년 나토에 가입했다.”
-폴란드에게 서방의 군사동맹인 나토 가입이 절실했던 이유는?
“나토의 ‘워싱턴 조약 제5조’(집단방위 조항)는 폴란드의 안전보장에 큰 의미가 있다. 폴란드의 나토 가입은 과거에 분단된 유럽을 극복하는 중요한 걸음이었다. 나토 가입으로 인해 폴란드는 공동의 가치와 안보를 공유하는 공동체에 속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됐다. 폴란드는 나토 회원국으로서, 나토 외 지역에서의 공동 작전과 임무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새로운 안보 위협이 등장한 현 상황에서 군 현대화와 같은 자주국방 능력이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로 떠올랐다.”
-폴란드는 ‘슬라브’ 정체성과 서유럽에 대한 소속감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런 속성을 지정학적인 장점으로 활용하는 구상이 있는가?
“역사적으로, 그리고 혈통적으로 폴란드가 슬라브 국가에 속하는 건 맞다. 하지만, 폴란드 뿐 아니라 체코,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등 중부와 동부 유럽 국가들은 현재 서방의 일원이다. 폴란드는 국가 발전과 안보를 위해 유럽과 대서양 양안 공동체에 통합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폴란드가 서방과의 통합에 성공하고 국제무대에서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동쪽 이웃나라들과의 관계 개선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폴란드와 스웨덴이 공동 제안해 2009년 출범한 ‘동방 파트너쉽(Eastern partnership)’ 구상이 좋은 사례다. 동방 파트너십은 유럽연합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벨라루스, 조지아, 몰도바, 우크라이나 등 국가들의 관계 개선과 해당국들의 민주화를 지원한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에서 일어난 시위는 다른 슬라브 국가들 역시 유럽 국가들의 공동체에 합류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보여준다.”
-폴란드는 근대 수백년간 유럽 열강들, 특히 독일과 러시아간 각축전의 최대 피해자다. 이후 독일. 그리고 러시아와 어떤 화해 과정을 거쳤나? 두 나라에 대한 폴란드인들의 인식은?
“폴란드는 러시아 문화를 사랑하고 존중한다. 폴란드인들은 러시아의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적이며 호의적이다. 독일에 대해서도 잘 정돈된 현대적인 국가이자 유럽연합 내 주요 협력국으로 인식하며, 독일의 유럽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독일과 폴란드의 화해는 오랜 과정을 거쳐 진행됐다. 양국 관계 개선에 실질적 진전이 이뤄진 시기는 정치적 상징성이 큰 사건들이 있었던 1989~1991년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 독일과 체결한 양국간 국경선조약과 선린우호조약이다. 두 나라의 ‘기적적 화해’의 본질은 정치인들끼리의 제스춰가 아니라 양국 사회의 상호 개방을 통해 과거의 트라우마와 선입견, 두려움을 극복했다는 것이다.”
-꼭 5년 전인 2010년 4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카틴 학살‘ 현장을 방문해, 도널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와 합동추모 행사에 참여했다. 러시아의 이런 태도가 양국관계 개선의 계기가 되지 못했나?
“폴란드는 당시 러시아가 보여준 화해의 제스춰와 푸틴이 수만명의 폴란드인이 희생된 스탈린 시대의 정치적 범죄를 시인한 것을 충분히 평가한다. 하지만, 그 뒤로 러시아가 양국관계와 국제사회에서 보여준 태도에 대해서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바르샤바/글·사진 조일준 기자iljun@hani.co.kr
▶ 얄타회담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5년 2월 미국·영국·소련의 정상들이 전후 처리 방향을 논의한 회담. 이 회담에서 세 나라는 소련의 요구에 따라 폴란드 동부 영토의 상당 부분을 소비에트 연방인 우크라이나에 떼어 주고 폴란드 서쪽 접경국인 독일의 동쪽 영토를 폴란드에 붙여주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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