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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현장] “남편은 조국에 남았어요”…한살배기 아기와 국경을 넘다

등록 2022-03-07 18:30수정 2022-03-07 22:19

우크라이나 접경지대를 가다 : 폴란드 코르초바

폴란드 국경검문소 인근 휴게소
난민과 친척들 ‘만남의 광장’ 돼
인접국에 지인 없는 이들은 막막
“어디로 갈지…지낼 곳도 없어요”
우크라이나 2세인 미셸(44)이 6일(현지시각) 오후 폴란드 코르초바 국경검문소에서 바르샤바로 가는 버스를 타고 인근 주차장에 내린 사촌동생들과 조카를 반기고 있다. 미셸은 이들과 함께 15시간을 차로 이동해 벨기에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갈 예정이다. 코르초바/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우크라이나 2세인 미셸(44)이 6일(현지시각) 오후 폴란드 코르초바 국경검문소에서 바르샤바로 가는 버스를 타고 인근 주차장에 내린 사촌동생들과 조카를 반기고 있다. 미셸은 이들과 함께 15시간을 차로 이동해 벨기에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갈 예정이다. 코르초바/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 이후 삶의 터전을 버리고 탈출한 우크라이나인들은 현재(6일 기준) 150만명을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18∼60살 남성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린 상태라, 여성과 어린이 등이 대부분인 난민들은 극도의 공포와 불안 속에서 기차로 자동차로 또는 걸어서 폴란드·헝가리·몰도바·루마니아·슬로바키아 등 이웃 나라의 국경을 넘었다. 김혜윤·노지원 두 기자가 유럽의 우크라이나 접경지로 급파돼 정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사연과 전쟁의 참상을 전한다.

6일 오후 4시(현지시각) 60명 안팎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태운 버스가 폴란드 코르초바 국경검문소 인근 휴게소에 멈춰 섰다.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르비우를 거쳐 온 버스다. 문이 열리자 20~30대로 보이는 여성들이 우르르 내렸다.

코르초바 검문소는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뒤 우크라이나-폴란드 국경에 있는 11개 검문소 가운데 가장 먼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국경 통제를 해제한 곳이다. 그 때문에 많은 피난민들과 친척들이 몰려 검문소 주변 휴게소는 이들이 상봉하는 ‘만남의 광장’으로 쓰이고 있다.

네모난 휴게소 안에서 나온 여성들은 뜨거운 커피와 차가 담긴 종이컵을 하나씩 들었다. 이어 한쪽에 삼삼오오 모여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여성들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에는 안도감과 탄식이 함께 섞여 나오는 듯했다. 이들은 모두 우크라이나에서부터 오랜 시간을 달려온 뒤, 국경검문소에서 입국을 앞두고 다시 몇 시간을 기다리느라 진을 뺐다.

우크라이나 난민 사태의 가장 큰 특징은 매우 짧은 기간에 난민이 급격히 늘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께부터 러시아의 군사 위협이 이어졌지만, 실제 전쟁이 날 것이라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전쟁이 터지자 깜짝 놀란 이들이 한꺼번에 국경을 넘으며 하루아침에 난민으로 변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5일 자료를 보면, 전쟁이 터지고 불과 10일 만에 무려 153만명의 우크라이나인이 국경을 넘은 것으로 확인된다. 이 가운데 89만명이 서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를 향했다.

준비 시간이 없다 보니, 대부분의 난민이 무대책이다. 검문소에서 만난 갈리아(37)는 서부 도시 이바노프란키우스크에 있는 집을 떠나 바르샤바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러시아가 전쟁 개시를 알린 지난달 24일 이 도시 공항은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불이 났다. 두려움에 휩싸인 갈리아는 일단 고향을 뜨기로 결심했다. 영어는 서툴렀지만 “에어포트”(공항), “파이어”(불)라는 단어만큼은 정확히 말했다. 그에게 어디로 갈 것인지, 지낼 곳은 있는지를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짧았다. “없어요.” 폴란드에 갈리아의 지인이나 친구는 없다. 살고 싶은 마음에 일단 바르샤바행 버스를 탔을 뿐이다.

서유럽 국가에 친척이 있는 이들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버스에서 내린 두 우크라이나 여성은 다른 이들처럼 버스에 다시 오르는 대신 트렁크를 열어 짐 가방을 찾았다. 그를 데리러 올 사촌이 있기 때문이었다. 진분홍색 우주복으로 무장한 어린 아기를 안은 채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이들 앞에 에스유브이(SUV)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섰다. 두 여성보다 키가 큰 한 여성이 벌컥 운전석 문을 박차고 나와 둘을 부둥켜안았다. 여성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키가 큰 미셸(44)은 우크라이나에 살던 사촌 동생들을 벨기에로 데려가려 15시간을 달려 코르초바까지 왔다. “저는 미국인이에요. 벨기에에 사는 우크라이나 이민자 2세대입니다. 우크라이나 사람인 조부모님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 이민을 갔는데 아직 사촌들은 우크라이나에 살아요. 동생들은 벨기에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겁니다.”

미셸의 사촌인 두 여성은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에서 버스를 타고 폴란드로 넘어왔다. 남편이 아직 우크라이나에 있지만 한살배기 아기를 위험한 곳에 계속 둘 수 없어 사촌 언니네로 간다. “남편들은 올 수가 없어요. 총동원령이 내려졌거든요. 조국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어요. 제발 전쟁이 끝나서 남편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우크라이나인 일야(38)는 체르니히우에 사는 친구들을 데리고 코르초바 국경을 거쳐 폴란드로 들어왔다. 체르니히우는 지난 4일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인해 민간인 거주지역에 큰 피해가 난 곳이다. 일단 친구들과 강아지까지 바르샤바에 데려다준 뒤 우크라이나로 돌아간다. 참전 중인 군인들을 위한 의약품을 구한다는 이유로 통행권을 얻어 폴란드에 왔기 때문이다. 이왕 국경을 건너는 김에 두려움을 호소하며 집을 떠나고자 하는 친구들을 차에 태워 데려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했어요. 우리 군인들은 치료가 필요합니다. 의약품을 우크라이나로 보내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 폴란드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 케이트(29)는 코르초바 국경 인근을 서성이다 취재진과 인사를 나눴다. 국경에 가면 우크라이나로 보낼 구호물품을 접수할 줄 알고 달려온 것이지만, 어디에 전달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었다. 그는 혼자서 크라쿠프를 거쳐 코르초바 국경까지 8시간을 차로 달려왔다. 그의 차 트렁크엔 지혈제와 붕대가 가득했다.

코르초바/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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