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부의 예비역 군 동원령 발표 이후 외국행 항공권 가격이 5배 가까이 뛰었다. 모스크바 브누코보 국제 공항에서 여행객들이 탑승 수속을 하고 있다.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내놓은 예비역 군인을 대상으로 한 ‘부분적 동원령’에 따른 충격으로 러시아 증시가 21일(현지시각) 폭락했다. 블화 가치도 한때 2달여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동원령을 피해 외국으로 떠나려는 이들이 늘면서 외국행 항공권 가격도 크게 올랐다.
러시아 증시의 대표 지수인 모엑스(MOEX) 지수는 이날 한때 2002.73으로 지난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최저까지 떨어졌다가 전날보다 3.8% 하락한 2130.71로 마감됐다. 증권 서비스 업체 ‘틴코프 인베스트먼츠’의 분석가들은 이날 하루 낙폭이 개전 당일인 2월24일(33.2%) 이후 가장 컸다고 전했다. 모스크바 증시에서 거래되는 주요 50개 종목을 달러 가치로 환산한 아르티에스(RTS) 지수도 4.1% 하락한 1106.8을 기록했다.
러시아의 대형 에너지 기업인 가스프롬과 로스네트의 주가는 한 때 12%까지 떨어지는 등 크게 흔들렸다. 두 회사의 주가는 장 후반에 회복세를 보이며 전날보다 각각 2.8%와 5.6% 하락한 채 거래를 마쳤다.
루블화 환율도 이날 한때 지난 7월7일 이후 최고인 달러당 62.7975루블까지 치솟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루블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3월 초 달러당 140루블 이상으로 치솟는 등 가치가 폭락했으나 이후 중앙은행의 긴급 자금 통제로 안정세를 찾았다. 6월 이후엔 50~60루블 수준을 유지해 왔다.
러시아 하원 금융위원회의 아나톨리 아크사코프 위원장은 이날 카잔에서 열린 금융 포럼 개막식에 참석해 금융 시장 내에서 불안 심리가 퍼질 가능성을 의식한 듯 “금융 생활은 지난 2월의 ‘특수군사작전’ 선언 이전과 다름 없는 체제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군대로 끌려갈 것을 우려한 이들이 국외로 빠져나가려 하면서 이날 출발하는 국외 항공권이 동났고 이후 출발 항공권 가격도 폭등했다. 러시아의 온라인 항공권 사이트 ‘아비아세일스’에 따르면 러시아인이 사증(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로 21일 출발하는 항공권이 모두 동났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이스탄불로 향하는 튀르키예항공 항공권은 25일까지 예약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통신은 덧붙였다.
가격도 폭등해, 평소 2만2천루블(약 50만원)이면 구할 수 있던 튀르키예행 편도 항공권 가격이 7만루블(약 160만원)까지 뛰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행 항공권의 최저 가격도 이달 평균 가격의 5배 수준인 30만루블(약 685만원)까지 올랐다. 항공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외국으로 나가지 못할 걸 걱정하는 이들 때문에 항공권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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