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2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주권국가를 지도에서 지우려고 이웃을 침략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7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둘째 날 기조연설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유럽을 상대로 핵 위협을 하면서 비확산 체제 의무를 거침없이 묵살했다”고 비판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도 “우크라이나에서는 야만적인 무기가 사람들을 죽이고 불구로 만들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맹비난했다.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예비역 부분 동원령을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푸틴이 재앙적 실패를 정당화하려는 것”이라며 “우크라이나가 승리할 때까지 쉬지 않고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에 대해 비난의 날을 세운 것은 이들만이 아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확산으로 3년 만에 처음 대면으로 열린 올해 유엔총회에서 대다수 주요국 정상들이 러시아를 성토했다.
일반토의 기조연설 첫날인 지난 20일 연단에 오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가 2월24일(러시아 침공일) 목격한 것은 제국주의와 식민 시대의 복귀”라고 말했다. 이번 전쟁에 중립을 표방한 국가를 겨냥해 “오늘 침묵을 지키는 이들은 어떤 면에서는 신제국주의와 공모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같은 날 연설에서 “제국주의 복귀는 유럽의 재앙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제국주의 그리고 신식민주주의의 반대편에 있는 세계 평화 질서에 대한 재앙이다”라고 말했다. 숄츠 총리는 이튿날인 21일 미국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선 “러시아가 전쟁에서 이길 수 없는 것은 명백하다”며 “그(푸틴)는 잘못 생각했고 상황을 과소평가했으며 절망적이다”라고 했다.
러시아와 서구 사이에서 중재자를 자처하는 튀르키예도 21일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의 4개 주에서 자국 편입을 묻는 주민투표를 강행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에 대해 성명을 내어 “그런 불법적인 기정사실화는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루 전인 20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미국 <피비에스>(PBS) 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일부 영토 점령을 인정하는 것이 분쟁의 해결책이냐’는 취지의 질문에 “아니다. 침략당한 땅은 우크라이나로 반환될 것이다”라고 답했다. 러시아가 2014년 3월 강제병합한 크림반도에 대해서도 “그(푸틴)에게 크림반도를 정당한 소유자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요청해왔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호국들이 모인 15~16일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도 냉담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16일 푸틴 대통령 면전에서 “지금은 전쟁을 하는 시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15일 정상회의에서 양국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선 거리를 뒀다.
서구와 거리를 둬온 제3세계 국가들 중에서도 러시아를 두둔하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아프리카연합(AU) 의장인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은 20일 유엔 연설에서 “아프리카는 신냉전의 온상이 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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