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자국 영토로 병합을 선언한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시에서 한 구조대원이 5일(현지시각) 크림반도 등 남쪽 지역으로 떠나기 위해 요양 시설을 나서는 노인을 돕고 있다. 헤르손/EPA 연합뉴스
러시아가 민간인 대피령을 내린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서 시가전에 대비해 민간 가옥 등을 약탈하고 있다고 우크라이나쪽이 주장하고 나섰다.
우크라이나군은 7일(현지시각) 전황 브리핑에서 “러시아군이 헤르손의 민간 시설을 점거하고 민간인 복장으로 위장한 채 시가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이들은 또 “러시아 군인들이 민간 시설과 사회 기반시설을 약탈하고 있으며, 장비와 식량, 차량 등을 러시아쪽으로 빼돌리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도 민간인 복장을 한 군인들이 주민이 떠난 아파트로 들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에이피>(AP) 통신 역시 현지 주민의 말을 인용해 군인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집 주인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이들을 퇴거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헤르손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인 지난 3월 점령하기 전까지 인구가 30만명에 이르던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였다. 또, 남부 흑해 연안 최대 항구인 오데사나 러시아가 2014년 강제병합한 크림반도 등과 연결되는 요충지다. 러시아는 주민 투표 등의 형식을 거쳐 지난달 5일 이 도시를 포함한 헤르손주 전체를 자국 영토로 병합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여름부터 헤르손을 되찾기 위한 반격에 나서 최근에는 헤르손 북부 인근 지역까지 진출했다. 헤르손시 함락 가능성이 커지자 러시아군은 이 도시에서 민간인들을 헤르손 남부 지역 등으로 대피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도심엔 인적이 크게 줄었고, 6일부터는 전력도 끊겼다. 러시아쪽 지방 정부는 우크라이나 정찰 부대 등이 전력 시설 등에 대한 파괴 공작을 벌인 탓에 전력이 끊겼다고 주장하지만,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러시아가 1.5㎞에 이르는 전력 송전선을 철거했다고 맞서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헤르손주를 가로지르는 드리프로강 북서쪽에 위치한 드니프리아니의 의료시설에 있던 장애 아동 100여명을 러시아쪽으로 보내는 등 주민 강제 이주를 계속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러시아가 헤르손과 함께 자국 영토로 병합한 동부 돈바스, 중남부 자포리자에서는 두 나라 군대가 대포 공격을 앞세워 맞서고 있다. 도네츠크주의 러시아쪽 지방 정부는 우크라이나군이 미국제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을 동원해 도네츠크시를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알렉세이 쿨렘진 도네츠크시 시장은 시내의 도네츠크철도 건물이 폭격을 당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중남부 지역인 자포리자주에 24시간 동안 52차례의 포격 공격을 가하는 등 이 지역 공격에 집중하고 있다고 <에이피>가 전했다.
한편,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와의 협상 가능성을 열어둘 것을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는 협상을 하지 않겠지만 미래 지도자와는 협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그는 트위터에 쓴 글에서 “우크라이나는 결코 협상을 거부하지 않았다. 우리의 협상 방침은 익히 알려져 있고 공개되어 있다. (하지만) 푸틴은 준비가 됐을까? 명백히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