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현지시각) 영국 보빙턴 캠프에서 훈련 중인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영국군 주력 전차인 챌린저2 전차에 올라 우크라이나 국기를 흔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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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은 고착화됐다. 이제 숙제는 신냉전이 열전으로 비화될 위기를 막는 것이다. 2월24일, 1년을 맞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국제 질서에 돌이킬 수 없는 이런 지정학적 격변을 불러왔다.
신냉전의 고착화, 즉 미국 중심의 서방 대 중국·러시아 블록의 대결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부른 최대의 국제 질서 격변이다. 중국의 외교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지난 21일 러시아 방문에서 오는 4~5월께 시진핑 중국 주석의 러시아 방문과 양국 정상회담을 확인해, 이런 조류는 굳어졌다. 미국 영공에서 격추된 중국의 ‘정찰 풍선’ 논란이 겹치며,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그동안의 대러시아 신중 노선을 접고 있다.
서방의 동맹도 공고화됐다. 유럽의 맹주 독일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접고, 본격적인 무장화의 길로 들어섰다. 스웨덴, 핀란드 등 서방 중립국들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결정하며, 나토는 다시 확장·강화의 길로 들어섰다. 동아시아의 일본과 한국과도 연대에 나섰다. 나토의 한국대표부가 지난해 11월 개설됐고, “한국은 나토의 적극적인 파트너”라고 선언됐다. 나토는 지난해 6월
스페인 마드리드 정상회의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발전이 유럽·대서양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신전략개념을 승인했다.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도 충격을 받고 있다.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유럽과 동아시아의 미국 동맹국인 33개 나라만이 참가한 반면, 이른바 중동·서남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의 ‘글로벌 사우스’ 대부분 나라들은 참가하지 않았다. 미국의 전통적 우방인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미들파워’ 국가들이 불참했다. 이들 국가는 러시아와의 경제 관계를 유지 혹은 확대하며 새로운 미국 중심의 경제 질서에 균열을 내고 있다. 특히 남아공은 지난 17일부터 오는 27일까지 인도양에서 러시아 및 중국과 연합 해상훈련을 한다. 러시아의 극초음속 미사일 ‘치르콘’(지르콘)을 장착한 호위함이 이 훈련에 참가한다. 중국 위안화와 러시아 루블화 결제 시스템은 서방의 제재로 고립된 러시아의 숨통을 열어주는 데서 나아가 달러 결제 체제에 균열 가능성을 보여준다. 루피-루블화 결제 시스템을 도입한 인도도 러시아의 값싼 석유를 수입하고, 러시아 석유 수송을 대리하는 것을 미국은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은 러시아를 봉쇄하려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적극 개입했으나, 블라디미르 푸틴이 그동안 주장하던 다극 체제로 이행 가능성이 생긴 것은 이 전쟁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크라이나는 과거 냉전 때 베를린 봉쇄 위기를 겪은 동·서독이나 한국전쟁이 발발한 한반도와 같은 신냉전의 최전선이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이 지나면서 분명해진 현실 앞에서 증명되는 것들이 있다.
첫째, 러시아에서 완전히 분리된 우크라이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자신의 세력권으로 재편입하려고 침공을 감행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항전과 서방의 지원을 거치면서, 러시아가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우크라이나의 민족국가화는 재촉됐다. 둘째, 우크라이나 내의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 등 러시아가 점령한 친러시아계 지역도 이제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 친서방-친러 세력의 지속된 갈등 속에서 이 지역의 주민들도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된 지위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런 현실은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성을 주장하면서도 뒤로 돌아서서는 이 전쟁이 군사적 승리로 종결될 수 없다고 말하는 서방의 당국자들의 평가에서 확인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서방에서 군사적으로 감독하는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이 지난달 20일 ‘우크라이나 국방 연락 그룹’(UDCG) 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무기 지원의 레드라인이라던 전차 지원을 결정하면서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장악하는 것도, 러시아군을 우크라이나에서 군사적으로 다 몰아내는 것도 매우, 매우 어렵다고 여전히 주장한다”고 말했다.
지난 연말부터 예고됐던 러시아의 대공세가 진행될지 지금도 명확하지 않고, 서방의 무기 지원이 우크라이나에 반격 능력을 보장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모두 현 전선에서 약간의 진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문제는 현실을 인정하는 협상과 종전으로 관리 체제를 만들어 양 진영의 확전과 열전을 피하거나, 아니면 그대로 ‘동결된 전쟁’ 상황으로 굳어져 열전의 불씨를 남길지이다. 굳어진 현실이 당장 서방이나 러시아 중 한쪽의 승리나 패배로 평가될 수 없다.
다만 서방 쪽의 입장에서 봤을 때, 과거 서독을 서방의 전초기지화해서 결국은 냉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전략이 우크라이나에서도 유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들어보자. ‘중국의 도전은 본질적이어서 미국이 그 대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대표적 대중 강경론자인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의 충고이니 ‘유화론’으로 평가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22일 <워싱턴 포스트> 기고에서 “미국이 러시아와 직접적인 대결을 하거나, 러시아의 전략적 패배가 강요된다면 누구도 이길 수 없는 핵전쟁의 위기가 초래될 것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 강화된 나토를 이룬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상실하고 강화된 서방에 직면했다”며 이렇게 권고한다.
“2030년 유럽의 지도를 상상하고, 그 안에서 우크라이나의 위치를 결정할 요인들을 고려하면, 학살을 통해서 현재의 분쟁선을 동서로 100마일 정도 더 옮겨놓은 것이 무엇이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와 서방의 지지자들은 향후 선택지로서 서독의 전후 역사를 살펴야만 한다. 미국 주도로 나토에 확장된 유럽의 제도 안에서 역동적인 자유시장 민주주의를 구축함으로써, 서독은 소련이 점령한 동쪽 지역 회복을 시간문제로 만든 상황을 조성했다. 우크라이나도 21세기의 서독이 될 수 없는가? 우리는 나토가 받쳐주고, 전선에 선 우크라이나와 함께하는 신냉전을 통해 유럽의 미래를 기대해야만 한다.”
이 지적처럼 1년이 지난 전쟁의 현실을 인정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재건과 독립을 지원하는 게 서방이 중·러 블록과의 열전을 막고 유리한 관리 체제를 만드는 길이다.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 주민의 무고한 죽음을 막고 미래를 담보한다. 러시아 역시 현 상황에서 교전을 멈춰 서방에 협상의 여지를 주는 것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다극화 질서의 가능성을 높이고, 중·러 블록의 영역을 확장하는 길이다.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한겨레>에서 국제 분야의 글을 쓰고 있다. 신문에 글을 쓰는 도중에 <이슬람 전사의 탄생> <지정학의 포로들> 등의 책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