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를 통해 러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에서, 지난해 9월27일 새어 나온 가스의 거품이 물 위로 올라오고 있다. 보른홀름섬/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9월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해저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1·2 가스관을 폭파한 것은 “친우크라이나 단체”라는 미국 주요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이 사건이 ‘미국의 공작’이라는 저명 언론인의 폭로로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친우크라이나 단체설’이 새로 떠오르며 사건의 진실이 점점 깊은 미궁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뉴욕 타임스>는 7일 “미국 당국자들이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파에 대한 새 정보를 검토한 결과, 친우크라이나 단체가 그 공격(노르트스트림 공격)을 한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나 우크라이나 최고위 당국자들이 이 공작에 관여했거나, 실행범들이 이들의 명령에 따라 행동한 증거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밝혔다. 친우크라이나 단체들이 가스관을 터뜨린 것 같지만, 우크라이나와 미국 정부의 책임은 없다는 주장이다.
미 당국자들은 신문에 “이 공작을 시행한 이들과 그 소속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에 새로 입수한 정보를 검토한 결과, 이 파괴 공작을 벌인 이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반대자들”로 보인다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누가 공작을 시행했고, 누가 지시했으며 자금을 댔는지는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다. 다만, 실행범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적자 혹은 둘 모두로 구성됐을 가능성이 크고, 미국인이나 영국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미 당국자들은, 우크라이나 정부 혹은 안보기관들과 연관된 대리 세력이 은밀히 수행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지난해 9월 발생한 노르트스트림 폭파는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1년 동안 벌어진 여러 사건 가운데 가장 큰 미스터리로 꼽힌다. 처음엔 러시아의 소행일 것이란 추정이 많았지만, 이후 사건의 실체는 오리무중에 빠진 상태다. 앞서 이 사건을 조사한 스웨덴·덴마크 수사 당국은 발트해 밑에 폭탄을 장착하는 정교한 기술 등을 살펴볼 때 ‘국가가 관여한 공작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혀왔다. 새 정보를 검토한 미국 당국자들은 폭탄을 다는 데 도움을 준 숙련된 잠수부들은 군이나 정보기관을 위해 작업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면서도, 범인들이 과거에 정부 차원의 특수훈련을 받았을 가능성은 있다는 애매한 견해를 밝혔다.
이날 보도가 나오기 한달 전인 2월8일 미국의 저명한 탐사보도 언론인 시모어 허시는 이 사건은 미국의 공작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장문의 기사에서 “지난해 6월 해군 잠수부들이 ‘발트해 작전 22’(발톱스 22)라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합동훈련의 은폐 아래 원격작동 폭탄을 설치했고, 3개월 뒤 노르트스트림 1·2 가스관 4개 중 3개를 폭파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침묵을 지켜오던 미국 주류 언론들이 이날 새로운 ‘친우크라이나 단체설’을 꺼내 든 모습이다.
<뉴욕 타임스>는 나아가 미국 관리들과 정보기관들이 이번 전쟁을 전면에서 수행하는 우크라이나의 정책 결정에 대해 제한적으로만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러시아의 어떤 목표를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는지 투명하게 밝히지 않아, 확전을 우려하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해 8월 초 크림반도 서부 연안의 러시아 사키 공군기지 공격, 10월 크림대교 폭파, 12월 러시아 영내 300㎞에 있는 랴잔·엔겔스 군사기지에 대한 공격 등이 이어졌다. 이 공격은 모두 우크라이나 당국이 주도한 것으로 보이지만, 명확한 사실관계가 지금껏 확인되진 않고 있다.
이 사건은 진실이 어느 방향으로 규명되는지에 따라 ‘우크라이나 지원’이라는 명분을 유지하고 있는 서구의 단일대오를 흩트릴 수 있다. 특히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관련성이 확인되면, 전후 70여년 동안 유지해온 평화주의 노선을 깨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에 나선 독일의 맹렬한 반발이 불가피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각각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은 트위터에 “우크라이나는 발트해의 그 사고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친우크라이나 사보타주(비밀 파괴공작) 단체들”에 대한 정보도 없다며 자신들의 관여를 부인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8일 “이 공격의 작가들이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것이 확실하다”며 “이상한 일로 거대한 범죄의 냄새가 난다”고 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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