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29일 미국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미 공군이 우크라이나로 가는 155㎜ 포탄을 점검하는 모습. 도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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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지원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윤석열 정부가 받아들인 뒤, 한반도 정세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킨 북-러의 ‘전략적 접근’이 이뤄졌다는 정황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무모한 선택이 한국 안보에 ‘재앙’을 불러오게 될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의 향상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6월 초 시작된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의 전말을 다룬 워싱턴포스트의 4일(현지시각) 특집 기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지난 2~4월께 이뤄진 우크라이나 포탄 지원을 둘러싼 공방이다. 기사를 보면, 지난 2월3일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 미국은 우방국 가운데 우크라이나군에 155㎜ 포탄을 제공할 능력을 갖춘 유일한 나라는 “(마음만 먹으면) 41일 안에 항공과 선박으로 33만발”을 제공할 수 있는 한국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미국이 한국에 집요한 요구를 했던 정황은 이미 공개된 바 있다. 4월 유출돼 큰 충격을 남겼던 미국의 한국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감청 문건’을 보면, 김성한 당시 실장 등이 2월 말께 포탄 33만발을 폴란드를 통해 우회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김 전 실장은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빨리 공급하는 게 미국의 궁극적 목표”라며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에 포탄을 판매하는 안을 제시했다.
이 안은 실제 추진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 미국을 방문한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4월11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자신이 몇달 동안 한국과의 포탄 제공 논의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밝히며, “미국의 개입이 없다면 이는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의 보복을 예상한 듯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제공할 수 있는 일종의 안전 보장이 없다면 이것은 성사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도 남겼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있던 한국의 최종 선택은 ‘포탄 제공’이었다. 윤 대통령은 4월19일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지원이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무기를 지원할 수 있다는 선언이었다.
그러자 1990년 수교 이후 우호 관계를 유지해온 러시아가 격렬히 반응했다. 인터뷰 다음날 마리야 자하로바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이 이런 행동을 하면, 한반도에 대한 우리 접근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달여 뒤인 5월24일 미국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수십만발의 포탄을 이송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급변침한 한국과 대조되는 것은 일본의 움직임이다. 일본은 말로는 러시아의 침략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무기 제공은커녕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의 10%를 차지하는 사할린 천연가스 개발 이권을 놓지 않고 있다.
보복을 공언한 러시아가 행동에 나선 것은 7월 말이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북한 전승절 70주년을 맞아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담했다. 두달가량 뒤인 9월13일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우주개발의 상징인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김 위원장과 만났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도울 것이냐는 현지 언론의 질문에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이라고 답했다.
러시아의 경고가 ‘허언’이 아님이 어느 정도 실증된 것은 11월21일이었다. 북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은 이날 밤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천리마-1형에 탑재해 성공적으로 우주 궤도에 안착시켰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은 이틀 뒤인 23일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발사 성공에는 러시아의 도움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에 ‘우회 지원’한 것으로 보이는 포탄이 부메랑이 되어 우리 발등을 찍은 것이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