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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식민지배 피해자 인권 짓밟는 ‘1965년 체제’를 민주화하자

등록 2023-03-10 05:00수정 2023-03-10 09:31

강제동원 해법 어떻게 볼 것인가 ①
기고ㅣ 요시자와 후미토시
요시자와 후미토시 니가타국제정보대학 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요시자와 후미토시 니가타국제정보대학 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2018년 10월30일과 11월29일에 내려진 한국 대법원 판결은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와 일본 기업 사이 분쟁을 해결한 것이다. 대법원은 일본 정부의 불법적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 불법행위로서 일본 기업이 조선인에게 강제노동을 시킨 것을 인정하고 원고가 요구한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했다. 피고인 일본 기업은 이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일본의 중국 침략과 아시아·태평양 전쟁 수행을 위해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동원 피해자가 된 사실은 일본 법원도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피해자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하고 일본 기업에 배상을 명령한 것은 이 판결이 처음이었다. 피해를 당한 뒤 70년 넘게 걸려 겨우 쟁취한 판결이다. 이 획기적인 판결에 피해자와 피해자를 지원한 이들은 국경을 넘어 기쁨을 나누었다.

한국인 피해자와 일본 민간기업 사이 분쟁은 대법원의 판결대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다. 원고 쪽 설명에 따르면 현재까지 일본 기업의 재산 압류는 착실히 진행돼왔고 이르면 1년 이내에 채권을 회수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일본 기업의 사죄가 꼭 필요하지만, 이대로 방해받지 않고 압류 재산을 일직선으로 현금화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그런데 이 판결이 나온 직후 일본 정부는 “있을 수 없는 판결”이며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즉각 개입했다. 주장의 핵심은 이 판결이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 위반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일본 정부가 식민지 지배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은 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일본 외무성은 협정 2조 1항 및 3항 조문을 들어 피해자 위자료 청구권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대법원 판결 협정 해석을 반증할 수 있는 충분한 논거를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대법원이 일본 정부와 조약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하려면 한-일 간에 협의하는 것이 정당한 방식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번 판결은 “일-한 관계의 법적 기반을 뒤집을 뿐 아니라 전후 국제질서에의 중대한 도전”이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협정 제3조에 입각한 대응(중재 요청)을 독단적으로 진행했다. 한국 정부에 대해 극도로 고압적인 태도를 취했고, 상대편의 제안은 일축하는 동시에 오로지 “국제법 위반” 상태의 시정만을 요구했다.

다시 말해 민간의 분쟁에 당사자가 아닌 일본 정부가 이 문제를 폭력적으로 외교 문제로 ‘바꿔치기’하며 분쟁을 격화시켰다. 민간 분쟁을 국가 간 분쟁으로 바꿔친 것은 일본 정부다. 일본에선 이 바꿔치기가 온당한지 문제 제기가 이뤄지지 않은 채 정부와 언론 모두 “한국(인)은 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편견만 확대해왔다. 한국인은 야만적이라는 노골적 멸시부터 “한국에서는 법보다는 정의를 우선시한다”는 더 그럴듯한 ‘학문적 견해’까지 여러 얘기가 나왔지만, 모두 편견이다.

왜 2018년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지 역사적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려 하지 않은 채 어느새 한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만이 초점이 됐다.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제3자 변제안’이라는 것은 2015년 12월 일본군 ‘위안부’ 합의처럼 북한에 대항하기 위해 한-일 관계를 복구하자는 안보 우선의 논리로 나온 것이다. ‘인권 문제’를 ‘채권 문제’로 바꿔쳐 ‘해결’하려는 것이다. 대법원은 판결에서 가해자인 일본 기업에 피해자의 요구와 마주하려는 진지한 자세를 요구했다. ‘제3자 변제안’은 일본 기업이 협력할 가능성이 없으니,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기업은 이를 통해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배상금 지급을 면할 수 있다.

피해자와 그들을 지원해온 이들이 오랜 기간 노력을 거듭해 겨우 손에 넣은 판결은 한·일 국가 권력에 의해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다. 이런 국가 권력의 행태를 폭력이라고 하지 않으면 뭐라 해야 할까.

1965년 국교 정상화로 성립한 ‘1965년 체제’는 미국의 냉전기 아시아 전략에 따라 한·일 양국이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것은 남북 분단 체제를 강화함과 동시에 일본의 조선 식민지 지배 책임을 불문에 부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1965년 체제’는 식민지주의 체제다. 군사정권기 일본의 책임을 물으려는 피해자들의 움직임은 ‘이적행위’라고 간주돼 단속 대상이 됐다. 민주화 이후 강제동원을 둘러싼 소송의 결과 한국인 피해자와 일본 기업 사이에 화해가 성립된 일도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는 데 그쳤을 뿐, 불법성과 가해 사실을 인정한 적은 없다.

한·일 양국은 민주주의를 내걸고 있는 국가다. 하지만 절차적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과제를 ‘8·15’(일본의 패전) 이후의 일본은 물론 ‘6·29’(한국의 민주화) 이후의 한국도 안고 있다. ‘1965년 체제’가 식민주의 체제인 근본 원인은 한·일 양국이 아직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65년 체제’는 식민지배의 피해자를 억압하고 소외시키는 가운데 유지돼왔다. 이 점은 민간의 분쟁에 폭력적으로 개입한 한·일 양국 정부의 언동에서 새삼 드러났다.

식민지배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일 정부가 식민지배 피해자의 인권을 계속 억압한다면 이를 민주적이라 할 수 없다. 부당한 폭력을 방치한다면 ‘야만’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식민지배의 책임을 묻지 않는 ‘미래 지향’에 미래는 없다. 이 야만적 한-일 관계야말로 ‘전후 최악’이라고 불러야 한다. ‘1965년 체제’의 민주화는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다.

요시자와 후미토시 니가타국제정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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