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7일 코로나19 감염 사태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도쿄 오다이바 해변공원의 올림픽 조형물 앞을 지나가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대회 중지나 연기라는 단어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지난 4일 스위스 로잔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 이사회가 끝난 뒤 한 말입니다. 도쿄올림픽(7월24일~8월9일)을 예정대로 개최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 자체가 도쿄올림픽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도쿄올림픽이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되는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질까요?
안녕하세요. 도쿄 특파원 조기원입니다. 도쿄올림픽 취소 이야기는 일본에서 초기에는 뜬소문쯤으로 치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지난 1월부터 에스엔에스(SNS)상에서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시모토 세이코 올림픽·패럴림픽 담당상은 1월31일 각의(국무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도쿄올림픽은 괜찮을까’라고 걱정하는 말이 떠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일은 전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근대 올림픽 역사상 올림픽이 감염병 때문에 취소된 예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 때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여름올림픽 때 지카바이러스 감염증이 문제가 됐고 일부 선수들이 출전을 포기했지만, 대회 취소나 연기는 없었습니다.
올림픽에는 천문학적 비용이 지출됩니다. 일본 행정부 각 기관의 지출을 검사하는 회계검사원이 지난해 말 대회 개최에 필요한 간접비용으로 지출된 금액만 이미 1조600억엔(약 11조9200억원)에 이른다고 발표했습니다. 총 개최비용은 앞으로 지출될 예정인 항목을 합치면 최소 3조엔(약 33조7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입니다. 나가하마 도시히로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이코노미스트는 도쿄올림픽이 취소되면 경제 손실 예상액이 2조6000억엔(약 28조6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대회 취소 권한은 국제올림픽위원회가 갖고 있습니다만, 국제올림픽위원회도 대회를 취소하기에는 부담이 큽니다. 중계권료와 대기업 후원으로 막대한 금액을 벌어들이고 있으니까요.
근대 올림픽 역사상 대회가 취소된 적이 몇 차례 있습니다. 1·2차 세계대전 때 일입니다. 그중에는 도쿄도 포함돼 있습니다. 일본에서 ‘환상 속 올림픽’으로도 불리는 1940년 도쿄올림픽입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올림픽을 개최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을 일으킨 뒤 개최권을 반납했습니다. 일본은 패전 뒤 고도경제성장 시기인 1964년 도쿄에서 올림픽을 개최했습니다. 지금도 일본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 소재 중 하나는 1964년 도쿄올림픽 즈음 열심히 일했던 서민들의 모습과 전후 부흥의 풍경입니다. 힘들었지만 그리운 시절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경제 대국이지만, 위치는 다소 변했습니다. 2011년 국내총생산(GDP) 기준 국가별 경제 규모 2위 자리를 중국에 내줬습니다. 인구는 감소하고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아베 신조 정부가 ‘아름다웠던 시절’로 추억되는 도쿄올림픽을 다시 개최하게 된 데는 이런 사회적 배경이 작용합니다. 도쿄올림픽 개최 뒤 아베 총리가 필생의 과업이라고 말했던 ‘헌법 개정’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많습니다. 아베 정부의 명운은 도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베 총리가 대규모 행사 일률적 자제 요청, 전국 초·중·고 일제 휴교 요청, 한국과 중국 입국자 사실상 격리 조처 같은 강경책을 잇달아 내놓는 배경엔 도쿄올림픽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취소라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시나리오도 거론됩니다. 하시모토 올림픽담당상은 지난 3일 “개최 도시 계약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가 (대회를) 중지할 권리를 갖는 것은 ‘2020년 안에 개최되지 않을 경우’라고만 쓰여 있다. 2020년 중이라면 연기도 가능하다는 해석을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1964년 도쿄올림픽은 여름이 아니라 가을인 10월10일부터 10월24일까지 열렸습니다. 일부에서는 무관중으로 대회를 개최하는 방안도 거론됩니다. 그러나 현재 일정은 미국 메이저리그, 유럽 프로축구 등 다른 프로스포츠 경기대회 일정 등을 고려해서 정해놓은 것입니다. 무관중은 물론 연기해서 개최해도 다른 스포츠 이벤트와 겹쳐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고 표현하기는 어렵게 됩니다.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국제올림픽위원회와 일본 정부는 일정대로 개최를 최대한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사람 뜻대로 움직이지는 않으니, 도쿄올림픽의 운명도 안갯속입니다. 하시모토 올림픽 담당상은 “5월 말이 큰 기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5월이 되면 윤곽이 드러나지 않을까요.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