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겨울올림픽 개막일인 2월4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두 정상은 이날 ‘무제한의 협력’을 다짐했고, 푸틴 대통령은 20일 뒤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베이징/타스 연합뉴스
박민희 | 논설위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언제 끝날까. 세계질서는 어떻게 변할까. 가장 중요한 열쇠는 중국의 손에 있다. 중국의 지원이 없다면 러시아가 강력한 금융·경제 제재를 장기간 버텨내기 어렵다. 미국이 중국을 향해 ‘러시아를 지원하면 중국도 제재에 연루될 것’이라고 거듭 경고하는 이유다.
중국은 어떤가. 검열 때문에 중국에는 반미·친러 목소리만 가득한 듯 보인다. 하지만 중국에도 러시아의 침략을 반대하는 여론이 적지 않다. 중국공산당 내부 인사들 중에서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중국 국무원 산하 공공정책연구센터 부이사장인 후웨이가 지난 12일 “중국이 러시아와 거리를 두지 않으면 세계로부터 더욱 고립될 것”이라며 “중국은 푸틴과의 관계를 가능한 서둘러 절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글을 발표했다. 큰 주목을 받은 이 글은 곧 검열로 삭제됐다.
중국 당국이 러시아의 침공을 비판하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우선적인 고려 사항은 두가지다. 첫째, 미국에 도전하기 위해 푸틴과의 전략적 협력이 매우 중요하고, 특히 대만 문제에서 러시아와의 공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1970년대 미국이 닉슨·키신저 외교를 통해 중국을 끌어들여 결국 1991년 소련을 무너뜨린 전략을 중국이 역으로 이용하려 한다. 강경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후시진 <환구시보> 전 편집인이 20일 웨이보에 올린 글은 이런 중국의 계산을 잘 보여준다. 그는 “러시아가 동반자가 되면 중국은 미국의 에너지 봉쇄도 두렵지 않고 식량과 원재료 공급도 보장받을 수 있다”면서 “대만해협 또는 남중국해에서 중-미 사이에 전쟁이 폭발한다면, 중국은 미군을 제압할 힘을 점점 갖춰가고 있고 러시아는 미국을 적대시하는 슈퍼핵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미국은 중국에 핵 위협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둘째, 국내 정치적 측면이다. 3연임을 앞둔 시 주석은 푸틴과 긴밀하게 협력해온 외교 전략의 오류를 인정하기 어렵다. 푸틴이 국내 반전 여론에 밀려 권력을 잃게 되는 사태도 막아야 한다. 푸틴의 몰락은 시 주석의 권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국 중국 당국은 “전쟁도 제재도 반대한다”는 모호한 입장을 내세워, 자국 기업들에 제재의 불똥이 튀지 않는 선에서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을 지속하려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러시아를 중국에 예속시키고, 원유·가스를 비롯한 자원을 저렴하게 확보하고, 특히 러시아가 그동안 중국에 내주지 않던 첨단무기 기술을 확보할 기회로 활용하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하면 세계 경제와 공급망의 균열이 깊어진다. 미국은 유럽과 다른 동맹국들을 규합해 중·러를 함께 견제하는 구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디커플링’의 분야가 훨씬 넓어지고 있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국제금융연구실장은 “냉전 시기 동구권에 대한 수출 제한과 비슷한 시스템이 러시아에 적용되었고, 그 대상을 넓히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 석유를 사는 중국 석유기업에 2차 제재를 하는 방식으로 공급망이 갈라질 수 있는 구도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글로벌공급망(GVC)의 균열이 깊어지고, 한-중 경제 관계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주시해야 한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될 것이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중국에 교훈은 되겠지만, 중국이 장기적 과제인 대만 통일 목표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만을 통일하고 미국을 넘어서는 최강대국이 되겠다’는 약속은 시진핑 주석의 통치 정당성을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다. 2024년 대만 대선, 시 주석의 세번째 임기가 끝나고 다음번 연임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는 2027년 등 고비마다 정세는 위태로워질 것이다. 한국은 대만 무력 통일은 “중국의 내정”이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심각한 위험임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이 안보를 보장해주는 시대도 끝났다. 상대적 국력이 쇠퇴하고 국내 정치·경제 회복이 최우선 과제가 된 미국은 동맹국들이 스스로 비용과 역할을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 각국도 안보를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복합적 도전의 시대를 한-미 동맹에 모든 것을 맡기거나 ‘사드 추가 배치’를 외치는 흑백논리의 ‘구호 외교’로는 헤쳐나갈 수 없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 때문에 지켜야 할 가치와 원칙을 접고 침묵해서도 안 된다. 한국은 새로운 질서 형성 과정에서 한국의 입장이 반영되도록 더 적극적으로 외교를 하면서 평화와 자유, 인권의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인들의 고통에 많은 이들이 마음 아파하면서 그들을 응원하는 것은, 그들이 무너질 경우 세계는 훨씬 더 위험해질 것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우리 모두가 우크라이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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