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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윤석열 정부, 미국을 오판한 ‘치명적’ 친미 외교 [아침햇발]

등록 2022-09-06 10:02수정 2022-09-07 02:07

5월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5월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박민희 | 논설위원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 캠프의 외교 정책을 총괄했다. 트럼프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뒤, 설리번이 한 일은 미국 외교와 중산층의 관계에 대한 심층 연구였다. 그가 민주당 외교·안보 전문가들과 함께 2020년에 내놓은 82쪽짜리 보고서 <미국 외교 정책을 중산층에게 더 적합하게 만들기>는 그 결과물이다.

보고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미국의) 중산층’이다. 값비싼 해외 군사 개입과 중국에 생산을 의존하는 방식의 세계화로 피해를 입은 미국 중산층을 되살려야만, 미국의 전세계 패권도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설리번 등은 강조한다. 미국 첨단기술 경쟁력 강화, 해외 투자 유치에 정부가 적극 나서고, 외교적 영향력을 이용해 글로벌 공급망 규칙을 미국에 유리하게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보다 훨씬 정교한 ‘미국 우선’ 정책이다. 미국이 비판해온 중국식 국가 주도 발전 전략까지 적극 차용하는 ‘미국 제조 2025’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 지금 ‘반도체와 과학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으로 실현되고 있는 미국의 ‘이기적 정책’은 뿌리가 깊다.

지난달 미 의회에서 통과된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북미에서 최종 조립’ 규정을 충족하지 못한 한국산 전기차가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뒤에야, 정부가 요란한 뒷북 외교로 분주하다. 정부 합동대표단이 미국으로 달려가고, 김성한 안보실장이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에게 해결을 요청했지만, 이미 확정된 법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현실만 분명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열흘 만에 바이든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한미가 경제안보 동맹으로 격상되었다’고 자화자찬한 지 석달 만에, 구호만 요란한 외교의 실상이 드러났다.

우선 미국 의회의 동향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외교의 기본기부터 부실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미 의회가 전광석화처럼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켜 대처할 시간이 없었다고 해명한다. 1년 동안 표류하던 법안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겨냥해 7월 말부터 초고속으로 진전된 것은 맞다. 그 사이에 테슬라와 지엠(GM) 등 미국 자동차 기업, 도요타 등 일본 기업, 캐나다와 멕시코 등은 미국 의회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치열한 로비를 통해 핵심 요구를 관철시켰다. 왜 유독 한국의 입장만 반영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정부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 의회 상황에 정통한 워싱턴의 한 전문가는 “지엠 등 미국 자동차 기업들이 ‘러스트 벨트에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며 상·하원 의원들에게 강력한 로비를 하면서 막판에 법안 내용이 바뀌었다”면서 “외교·안보, 통상 등의 주요 현안이 미 의회를 중심으로 결정되고 있는데, 주미 한국대사관과 외교부가 미국 의회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도 못했다”고 전한다.

윤석열 정부의 ‘친미 외교’가 정작 미국의 정책 변화를 제대로 읽고 대응하지 못한 것도 치명적 한계였다. 미국의 한국 전기차에 대한 차별은 2016년 주한미군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이 한국산 배터리가 탑재된 차량을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시킨 보복 조처와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미국과 중국 모두 자국 산업 경쟁력과 안보 논리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반도체와 에너지·바이오·우주항공 등 중국과 경쟁하는 분야에서, 중국처럼 국가 주도로 투자와 연구 개발에 나서고, 핵심 분야의 공장들을 미국 내로 흡수하는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 정부는 ‘동맹의 선의’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현태 인천대 교수(중어중국학과)는 “지금과 같은 흐름 속에서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새 기준에 맞추려고 미국으로 공장 이전을 서두를 것이고, 한국 전체로는 실업과 산업 공동화 등이 심각해질 수 있다”며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은 미국이 한국 안보를 더욱 중시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한데 이런 산업을 미국으로 옮길 경우 한국의 안보 우려가 커질 가능성 등도 다각적으로 고려해 정교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첨단기술과 시장의 필요에 따라 미국과 협력 하더라도, 국내 노동자들과 산업 경쟁력을 고려해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전략적으로 미국과 협상을 해나가야 한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국가들과 공조하며 미국에 ‘동맹의 책임’을 단호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전임 정부의 ‘친중 외교’를 비난하느라 바빴던 윤석열 정부는 이런 고민과 전략을 보여준 적이 있는가.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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