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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이택 칼럼] 그래도 ‘이탄희’가 옳았다

등록 2019-01-30 16:42수정 2019-01-30 22:18

아무리 조직 최대의 숙원사업이라 해도 상고법원을 위해 재판을 거래대상으로 삼은 ‘양승태’ 방식은 결국 실패했다. 조직보다 진실을 택한 ‘이탄희’가 옳았다. 더디더라도 사법부가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참여연대의 ‘의인상’ 시상식장에서의 이탄희 판사
참여연대의 ‘의인상’ 시상식장에서의 이탄희 판사

2017년 2월 기획심의관 발령을 받고 법원행정처에 출근한 이탄희 판사는 전임자한테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라는 게 양승태 대법원장의 결정’이고 바로 그게 자신이 맡을 업무라고 했다. 고심 끝에 사표를 냈으나 ‘이탄희’와 ‘양승태’ 사이 긴 싸움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이후 와해를 지시한 사법농단의 ‘몸통 양승태’를 드러내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영장판사가 ‘양승태’의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고 한 것은 “재판은 순수하고 신성한 것”이라며 “거래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던 놀이터 회견도, 부하들의 ‘모함’이란 법정 항변도 모두 거짓이었음을 의미한다. 컴퓨터를 디가우싱하고, 선임재판연구관이 기록을 모두 없애버렸어도 법관사찰과 재판거래의 증거를 더는 감출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사표로 저항한 이탄희 판사, 그리고 그와 함께 진실을 추구해온 또다른 ‘이탄희’들의 승리다.

이 판사가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한테 들은 건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는 한마디. 이후 사법농단의 진실을 찾아 끈질기게 몰아붙인 건 동료 ‘이탄희’들이었다. 사법사상 처음으로 판사들이 먼저 나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소집했다. 양승태 대법원이 꾸린 첫 진상조사위가 ‘뒷조사 파일은 없다’고 덮으려 하자 추가 조사를 요구했다.

결국 대법원장이 바뀌고 다시 시작된 2차 조사에서 뒷조사, 블랙리스트를 뛰어넘는 대어가 낚였다. 기획1심의관용 컴퓨터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이 튀어나왔다. 판사 사찰 문건을 찾으려 ‘김동진’(사찰 피해 판사) ‘동향’을 검색어로 넣었다가 예상치 않게 재판거래 ‘동향’의 꼬리를 잡은 것이다. 결국 3차 조사에서 사법농단 문건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오면서 재판거래는 실제상황으로 굳어졌다.

이후에도 ‘이탄희’들은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열어 검찰 수사를 촉구함으로써 ‘조직’보다 ‘진실’을 택했다. 올해 초 두번째 사표를 낸 이 판사는 최근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진실을 밝히는 건 끝없는 노력과 희생을 요구한다’며 ‘그때는 알지 못했다’고 적었다.

‘진실’을 덮어서라도 ‘조직’을 보호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은 끊임없이 ‘양승태’ 편에서 ‘이탄희’들을 공격했다. ‘놀이터 회견’을 이어받아 전국의 법원장들과 ‘대법관 일동’까지 재판거래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만 봐도 거짓주장임을 알 수 있다. 청와대가 앞장서 2013년 10월 멀쩡한 전교조를 법 밖으로 내몰았으나 12월 서울고법이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고 이듬해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까지 수용했다. 대통령이 진노해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양승태 대법원은 아예 ‘청와대의 변호인’으로 나섰다. 고용부가 낼 ‘재항고 이유서’를 대필해주고 대법원에 접수된 이유서를 다시 검토해 ‘보충서면’까지 만들어줬다. 곡절 끝에 청와대 바람대로 대법에서 뒤집은 이틀 뒤에는 즉각 친박 실세 의원을 만나 대법원장-대통령 면담 일정을 확정했다.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이 직접 ‘정권 협조사례’ 메모까지 준비하는 등 수뇌부가 본격적인 상고법원 로비에 나섰다. 이보다 생생한 ‘거래’의 증거가 있을까. 검찰이 임종헌 전 차장 공소장에 “전교조 사건을 청와대와의 ‘거래’ 대상으로 삼았다”고 적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강제징용 손해배상이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서도 ‘거래’ 시도의 증거들이 문건과 진술까지 수두룩하다.

‘양승태’ 편에 선 일부 언론과 판사들이 사법농단 사건에 진보-보수의 진영논리 프레임을 들이대는 건 더 황당하다.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진보’ 성향 판사들이 이 사건을 주도적으로 끌고 간다는 것이다. 이 연구회 판사들을 진보로 딱지 붙이는 것도 무리거니와 재판거래·법관사찰의 명백한 불법에 눈감는다면 ‘보수’도 될 수 없다. 합법과 불법, 진실과 거짓, 상식과 몰상식의 문제를 진보-보수로 호도하는 건 ‘진실’을 먹고 사는 언론이나 법관의 길이 아니다.

아무리 조직 최대의 숙원사업이라 해도 상고법원을 위해 재판을 거래대상으로 삼은 ‘양승태’ 방식은 결국 실패했다. 조직보다 진실을 택한 ‘이탄희’가 옳았다. 더디더라도 사법부가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럼에도 이 판사는 다시 판사직을 내려놓기로 했다. 조직의 치부가 드러나고 단죄가 진행되면서 심적 부담도 컸을 것이다. 마침 청와대 게시판에선 사표 반려를 요구하는 청원이 시작됐다. 신뢰를 되찾는다면, 법원에 그의 자리도 있었으면 좋겠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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