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자율형사립고 지정취소에 대한 교육부 발표가 눈앞이다. 큰 틀에서는 일반고 전환으로 방향을 잡은 듯하다. 보수 언론이 자사고를 엄호하지만 국민 여론은 오래전부터 자사고 폐지에 공감해왔다. 자사고가 고교교육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고교 교사들의 호소는 긍정 응답의 세배를 훌쩍 넘는다. 정권 초기에는 시행령 개정을 통한 일반고 일괄전환이 간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 특히 입시제도는 쇠뿔을 단김에 빼는 방식이 쉽지 않다. 결국 정부는 일반고와 동시선발, 지정취소권을 활용한 단계적 전환을 거쳐 내년에 시행령 개정으로 고교체제를 개편하겠다는 우회로를 택했다. 결국 고개마다 벼랑을 탄다. 어쩌겠는가? 욕망을 부추긴 제도를 만든 원죄는 정부에 있다. 학생 학부모 입장에선 특정 정권이 아니라 나라가 한 일이다. 국민의 마음을 얻을 청사진을 내놓고 정중하게 설득하며 가는 수밖에 없다. 자사고 운명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가 많다. 당장은 자사고와 공동운명체인 외국어고와 국제고가 있다. 교육 관점과 입시 전략을 세워야 하는 현재 초·중학교 학생 학부모들에게도 발등의 불이다. 서열화된 체제 탓에 황폐화를 당연시했던 일반고도 비빌 언덕이 없어지는 현실 앞에 심박 수가 높아진다. ‘아찔한 텐션’은 아마도 사교육 시장과 이에 기대어 살아가는 자본과 권력에서 더할 것이다. 승자독식 학벌사회는 사교육 시장의 숙주이고 그 초입은 고입이다. 초·중학생과 학부모들에게 고입이 주는 심리적 압박은 대입보다 훨씬 전방위적이고 냉혹하다. 자사고 준비 학생은 일반고 희망 학생보다 고액 사교육비를 4.9배 더 쓴다. 재학 중 사교육비 또한 일반고에 댈 바가 아니다. 상산고에서 보는 것처럼, 수능에 특화된 학교 특성상 재수와 반수 비율이 매우 높고 이들은 고액 사교육 시장의 안정적 공급망이다. 한마디로 현재의 고교체제는 사교육 시장을 떠받치는 튼튼한 기둥이다. 이 체제가 무너지거나 완화되면 입지는 급격히 좁아진다. 이들의 불안이 또 어디에서 안심 영역을 구축할지 자꾸 불안해진다. 사실 자사고는 지금 상태로도 존립이 위태롭다. 선호도가 떨어져 정원의 90%를 채우지 못한 학교가 67%인 28곳에 이른다. 총 54곳이던 자사고 가운데 이미 12곳이 자율신청으로 일반고로 전환했다. 올해도 이미 4곳이 지정취소를 요청했고, 지정취소 대상인 11곳이 일반고로 전환되면 27곳만 남는다. 내년에도 올해 비율로 전환된다면 겨우 10여곳만이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이들 학교가 지정 목적에 충실한 학교로 존재 증명을 할지, 유통기한이 지난 특권교육 시스템을 안쓰럽게 부여잡다가 쓸쓸하게 퇴출당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1995년 정부의 5·31 교육개혁안에서 시작된 자립형사립고 설립 제안이 누더기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자사고 설립의 명분이었던 다양성 가치는 고교서열로, 자율성은 ‘입시 몰빵’ 사립학교 교육과정 운영 근거로, 창의성은 성적 우수 학생만을 위한 특별교육으로 ‘활용’되면서 교육생태계 전반을 비틀어왔다. 학교 선택권, 사립학교의 자율성, 영재교육 등은 엄격한 기준으로 제한적으로만 허용해야 한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존엄과 평화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강남 쏠림 현상이 일어나서 부동산이 폭등한다거나, 미래인재 양성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진부한 이야기도 그만할 때다. 그때의 교육환경이 아니다. 독점적 정보의 알고리즘을 획득하며 소수의 엘리트끼리만 어울려 성장하게 하면 사회가 위태로워진다. 그들을 미래인재라 부르면 더더욱 안 된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교를 다양하게 만들겠다는 고교 다양화 목표는 애초에 헛된 꿈이었다. 우리가 알던 ‘문제의 자사고’들과는 이제 굿바이 인사를 나눌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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