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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동물당이 필요하다 / 전범선

등록 2020-02-28 18:06수정 2020-02-29 15:35

전범선 ㅣ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여의도 문턱이 낮아졌다. 이제 70만표만 얻으면 국회에 입성한다. 다양한 소수 정당이 목소리를 낼 토양이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이번 총선을 앞두고 정당이 많이 탄생했다. 기본소득당, 규제개혁당, 여성의당, 페미당 등 의제 정당들이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녹색당, 노동당 등 원외 군소정당이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도 커졌다. 한국 진보정당들의 숙원사업이었던 유럽식 다당제가 한 걸음 가까워졌다.

동물권 단체들 사이에서는 동물당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에서는 ‘동물당’이라는 말이 일종의 패러디처럼 들릴 수 있지만, 유럽에서는 그렇지 않다. 2002년 네덜란드 동물당이 탄생한 이후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핀란드 등 유럽 14개 국가를 비롯해 전 세계 총 19개의 동물당이 생겨났다. 네덜란드 동물당은 현재 하원 150석 중 4석, 상원 75석 중 3석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낸다.

스페인 동물당은 민족문화인 투우를 동물권 논리로 반대하며 지지를 넓혀왔다. 2015년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5천만 인구 중 100만표 이상을 얻었지만, 선거법 문제로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동물당은 70만표만 얻으면 되니, 마찬가지로 민족문화인 개고기 문제를 공격하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마냥 허황된 기대는 아닌 것 같았다.

인간 문제도 산더미 같은데 동물당은 시기상조라고 할 수도 있다. 똑같은 논리로 기성 정치권은 여태껏 여성 문제, 성소수자 문제, 청소년 문제, 장애인 문제 등을 외면했다. 동물권 단체는 여의도에서 무시당하는 것에 익숙하다. 몇몇 동물복지·동물애호 단체들처럼 육식주의를 용인하지 않으면 애초에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도 없다. 페미니스트를 표방하는 국회의원은 있어도 비건 국회의원은 없다. 심지어 녹색당에서도 비건은 소수다. 날마다 닭 250만 마리, 오리 16만 마리, 돼지 5만3천 마리, 개 3천 마리, 소 3천 마리를 식용으로 도살하는 나라에서 “시기상조”란 말은 무색하다. 일상적 대학살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야 한다.

‘동물해방물결’ ‘시셰퍼드 코리아’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등은 진지하게 동물당 창당을 논의했다. 나는 네덜란드 동물당에 전화를 걸어 연대를 표시하고 지원을 약속받았다. 아시아 최초의 동물당이 탄생할 것이라는 소식에 오래 기다렸다는 듯 한층 고무된 목소리였다.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주변 비건들을 중심으로 창당준비위원회 발기인을 모았다. 당사를 정하고 강령을 작성했다. ‘동물당 매니페스토’라는 제목의 전시회도 기획했다. 발기인 대회를 치르고 선관위에 신고만 하면 되었다.

그러다 지난주, 일단 보류를 결정했다. 4월15일 총선에 후보를 내려면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뒤늦게 시작한 탓도 있었고, 코로나 때문에 모집 활동에 제약이 컸다. 섣불리 할 일은 아니었다. 총선에 얽매이지 않고 최선의 방식으로 최대한 빨리 창당하기로 했다. 전시회를 진행하면서 여론을 더 모으기로 했다.

대한민국에는 인간 동물 5천만명뿐만 아니라 농장동물 1억9천만 마리, 반려동물 874만 마리, 실험동물 373만 마리가 살고 있다. 비인간 동물은 엄연한 대한민국 사회의 일원이다. 그들은 인간이 만든 자본주의 체제에 강제로 편입되어 착취당하고, 학대당하고, 강간당하고, 학살당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사명이라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어느 정당도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동물당은 말 못하는 이들의 고통을 말하는 정당이 될 것이다. 가장 급진적인 정당이 태동하고 있음을 알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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