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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재승 칼럼]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등록 2020-03-25 18:49수정 2020-03-26 02:41

경총이 ‘코로나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이라며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경영상 해고 요건 완화, 경영인의 경제 범죄에 대한 가중처벌 기준 완화 등을 입법 과제로 국회에 건의했다. 참으로 염치가 없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래픽 김지야,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 김지야, 게티이미지뱅크

올해는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다. 단순한 희망이 아니었다. 경제연구기관과 전문가 대부분이 그렇게 전망했다. 미-중 무역분쟁 진정, 반도체 업황 회복,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실제로 1월까지만 해도 경제가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조짐이 보였다. 통계청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1월 산업활동 동향’에선 현재와 앞으로의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두달 연속 동반 상승했다. 3년 만에 처음이었다. 1월 일평균 수출도 4.8% 늘어났다. 14개월 만에 증가세로 반전했다.

그러다 코로나발 경제 충격이라는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 20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1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 봐서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마이너스 성장이 더 길어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23일 발표한 성명에서 “코로나19가 전세계 경기 침체를 야기할 것”이라며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고 했다. 과거 위기와 달리 코로나발 경제위기는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동시 충격을 주는 ‘복합 위기’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내부 변수가 아니라 외부 변수에서 촉발된 위기여서 대응하기도 훨씬 어렵다. 코로나19의 팬데믹이 잡히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는 비관론도 나온다. 코로나19 감염이 두려워 사람들이 외부 활동을 기피하는 바람에 재정 지출과 금리 인하의 효과가 반감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코로나 이후 경제 회복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역할이 막중하다. 지금까지 보면 시행착오가 없지 않지만, 비교적 과감하고 신속하게 대처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동안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형태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발 경제위기를 헤쳐나가려면 경제 주체들이 상생의 정신으로 고통을 나눠야 한다. 그래야 혹독한 시절을 버텨내면서 앞날을 기약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장차관급 공무원들이 앞으로 4개월 동안 급여 30%를 반납하겠다고 한 이후 국회,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으로 급여 반납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앞서 전북 전주 한옥마을과 대구 서문시장 등에선 ‘착한 임대료 운동’이 시작됐다. 자신들도 어려운 알바노조는 더 어려운 식당 주인들을 도우려고 ‘과식 투쟁’을 하고 있다. 소상공인 살리기를 위한 첫번째 프로젝트라고 한다. 이렇게 서로 도와야 위기 극복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런 고통 분담의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이들이 있다. 사용자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23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이라며 40개 입법 과제를 국회에 건의했다. 남은 20대 국회와 21대 국회가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경영상 해고 요건 완화, 경영인의 경제 범죄에 대한 가중처벌 기준 완화 등을 법으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 자기 배만 불리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참으로 염치가 없다.

지금 해고를 쉽게 만들어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정부가 24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내놓은 ‘민생·금융 안정 패키지 100조원 공급 방안’에 대기업까지 포함시킨 것은 해고를 하지 말아달라는 뜻이다. 고용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법인세 인하와 상속세 인하는 또 뭔가? 법인세는 이익을 내는 흑자 기업이 이익의 일부를 세금으로 납부하는 것이다. 상속세는 상속을 받을 재산이 있는 사람이 불로소득의 일부를 내는 것이다. 지금은 여유가 있는 이들이 세금을 깎아달라고 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세금을 더 내고 그 세금으로 재정 지출을 늘려 취약계층을 떠받쳐줘야 할 때다. 세금을 깎아달라면서 정부에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더욱이 이 와중에 경영인의 경제 범죄에 대한 봐주기 입법을 해달라니, 벼룩도 낯짝이 있다.

그러면 안 된다. 이기적 행동은 공멸을 부를 수 있다. 서로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 고통 분담은 여유 있는 이들이 먼저 손을 내밀 때 가능해진다.

안재승 ㅣ 논설위원실장
jsahn@hani.co.kr

▶ 관련 기사 : ‘코로나 핑계’…경총, 상속세 인하 등 요구

▶ 관련 기사 : ‘고통 분담’ 위한 공무원 급여 반납, 지역 곳곳으로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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