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수 l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8일 “경제위기 극복에서도 세계의 모범이 되자”는 비전을 내놨다. 우리는 코로나 방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세계의 모범으로 주목받고 있다. 방역에서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하는 저력을 보여줬는데, 경제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케이(K) 방역’에 이어 ‘케이 경제’도 성공한다면….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는 일인데, 문제는 ‘어떻게’에 달려 있다.
정부는 코로나 경제 전시 상황을 맞아 지금까지 240조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 규모의 대책을 쏟아냈다.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 긴급 지원, 기업 도산을 막기 위한 금융 지원, 일자리 유지와 창출을 위한 고용 대책, 사상 최초의 재난지원금까지. 모두 파격적이고 전례가 없는 조처들이다.
전쟁은 모두에게 고통이지만 고아와 과부에게는 더 참혹하다. 코로나 위기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고통이 크다.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의 삶의 기반이 줄지어 무너지고 있다. 임시·일용직 등 취약계층은 매일매일 실업과 생계 위험의 공포에 떤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많다. 우리는 이미 현실에서 그 징조들을 목도하고 있다.
코로나 극복은 단순히 대기업과 국가 경제를 살리는 데 급급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위기 뒤에는 빠른 회복이 이뤄지도록 힘써야 한다. 국가와 기업이 살아도 다수 국민이 피눈물을 흘린다면, 대한민국은 또다시 1997년 외환위기 때와 유사한 ‘생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촛불 대선에서 ‘더불어 잘 사는 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약속했다. 소수 대기업에 의존해 양극화만 심화시키고, 개인은 뒷전인 기존 성장정책에서의 탈피를 선언했다.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은 그 핵심정책이다. 가계 소득을 늘리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면 소비가 살고 생산·투자도 증가해 경제성장과 일자리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 우리가 경제위기를 제대로 극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가계소득의 급감을 막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며, 고용을 지키는 일이다.
하지만 보수언론은 총선 뒤에도 ‘소주성 흔들기’에 여념이 없다. “경제 전시 상황이라면서 언제까지 정책 역주행인가”라고 외친다. 보수언론은 문재인 정부 내내 ‘소주성=반시장·반기업·친노동정책=경제파탄’을 주문처럼 외웠다. ‘정권 심판’에 올인한 총선에서 참패한 뒤 잠시 풀이 죽은 듯하더니, 이내 옛날로 돌아갔다.
문 대통령은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며 일축한다. ‘소주성’은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의 종합판이다. 이를 포기하라는 주장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의 ‘실패’를 망각한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양극화 심화 시대에 ‘친대기업’이라는 시대착오적 공약을 내걸었다. 결국 집권 중반에 갑질 근절을 핵심으로 한 ‘동반성장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이 요구한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집권했지만, 경기 침체를 이유로 넉달 만에 폐기했다. 결국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 모두 실패했다. 진정성 없이 집권이나 정권 안정을 위해 땜질식으로 차용한 정책이 성공할 리 없다.
5월10일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3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제 남은 시간은 2년뿐이다. 국민은 과거 경제정책으로의 회귀에 동의하지 않지만, ‘소주성’도 아직 분명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소주성’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그동안 보수에 의해 몰매를 맞았던 ‘소주성’에 대한 객관적 재평가도 필요하다.
정부는 겉으로 대놓고 강조하지는 않지만 이미 시동을 걸었다.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위 위원장(부경대 교수)은 “코로나 위기 대책은 이미 소주성의 연장선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집중 지원, 사상 최대인 10조원 규모의 고용 대책, 고용 유지를 조건으로 한 기업 지원이 대표적”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은 4·15 총선에서 여당에 180석을 몰아줬다. 하지만 코로나 방역에 대한 칭찬이 쏟아지고, 국난 극복을 위해 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이전에는 상황이 만만치 않았다. 2년 뒤 대선에서 민생·경제에 실패한 정권이 승리하기는 어렵다. 정부여당이 축배를 들기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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