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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국판 뉴딜’에는 왜 ‘그린’이 빠져 있을까

등록 2020-05-08 20:04수정 2020-05-18 09:36

지난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그린뉴딜’ 긴급 토론회에서 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이 토론자의 발표를 듣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그린뉴딜’ 긴급 토론회에서 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이 토론자의 발표를 듣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이 칼럼엔 필자의 직함을 쓴다. ‘기후변화팀’을 지면에 처음 드러내게 된다. 설명이 필요하겠다. <한겨레>가 최근 편집국 내에 이 팀을 신설했다. 한 달쯤 지났다. 기존 환경·에너지·기상·과학 담당 기자들을 한팀으로 하고 팀장을 추가한 정도지만, <한겨레>가 이 문제에 이전과 다른 관심과 의지를 갖고 취재하고 기사를 쓰겠다는 의미 정도는 있다. 영국 <가디언> 등 유럽 언론엔 더러 있는 기후변화팀이 국내에도 생긴 것이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기후변화팀장을 맡게 됐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 비관적이다. 최근에야 기후변화 관련 사안을 가까이 들여다본 인상을 말하자면, 인류는 이미 실기한 듯싶다. 그래서 주변엔 기후변화팀의 임무를 “인류 절멸사의 초기 과정을 기록하는 일”이라 넋두리한다. 영국에서는 2018년 ‘절멸 저항’(Extinction Rebellion)이란 단체가 만들어져 각종 기후변화 대응 촉구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절멸’이란 단어에서 얼마만큼의 체념을 느꼈다. 그래도 이들은 활동가 1천여명이 모여 런던 시내 주요 도로와 다리, 건물 등을 점거하는 매우 적극적인 시위를 벌였다. 행동하는 절망이랄까.

다수는 언제나 그랬듯 인류가 난관 속에서도 답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후 문제를 다루는 과학자들의 계산은 매우 우울하다. 게다가 이 계산엔 인문사회학적 고려도 빠져 있다. 인류가 종 전체의 생존이 걸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느냐, 아니냐는 인류학이나 사회학, 정치학의 관심사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이해가 쉽다. 우리는 지금까지 온실가스를 제대로 줄여본 적이 없다. 단 두 차례, 1998년과 2014년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었는데 1998년은 외환위기의 충격 때문이었고 2014년은 매우 소폭(0.8%) 감소한 정도에 불과했다. 의미 있는 감축이 아니었다. 1998년 한국이 배출한 온실가스는 한 해 전보다 14%나 줄었다. 우리가 함께 경험해 알고 있는 그 잊을 수 없는 충격적 난리를 겪은 결과였다. 다시 말해 이런 심각한 충격이 아니고서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일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기후가 변하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 온다. ‘절멸의 시작’쯤 된다. 이 파국은 지구 평균기온이 지금보다 0.5도,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더 오르면 찾아온다. 유엔환경계획(UNEP) 보고서를 보면, 이 1.5도 선을 넘지 않으려면 인류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해마다 7.6%씩 줄여가야 한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대량해고와 실직, 자살 소식이 끊이지 않던 외환위기 때 온실가스가 14% 줄었으니 우리가 경험한 충격을, 꼭 그 절반만큼 인류가 해마다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도 십수년 동안이나 말이다. 코로나19로 이전과 전혀 다른 시대를 맞게 됐다는 올해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 폭은 최대 8% 수준일 전망이다. 지구적 수준에서 산업화 이래 첫 대규모 감소인데도, 필요한 감축량을 겨우 충당했을 뿐이다.

유럽에선 지난해부터 ‘기후변화’가 아닌 ‘기후위기’로 쓰자는 얘기가 나왔다. 국가가 나서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한 뒤 마치 전쟁 때처럼 각종 물자를 징집하듯 총체적 사회구조 개편을 감행해야 한단 주장도 있었다. 코로나19로 위기의식이 고취된 이때 에너지 전환을 중심으로 한 ‘그린뉴딜’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나마 실효성 있는 처방이란 진단이 나오지만, 한국 정부는 ‘디지털 뉴딜’을 하겠다고 한다.

지난 5일 국회에선 그린뉴딜을 다룬 토론회가 열렸다. 이례적으로 많은 이들이 토론장을 찾았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의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한국 기업 3곳이 향후 수주를 확정한 금액만 무려 300조원가량인데도, 정작 공장은 죄다 외국에 짓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 등지에서 조만간 전기차 생산 과정에서 쓰는 전기를 100%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제할 판인데, 국내에 공장을 지으면 이 조건을 맞추기 힘들어서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7.6%(2017년)에 불과하다. 이 숫자가 한자릿수인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한국뿐이다. 전 인류에게 파국이 닥치기 전에, 기후위기 대응을 외면한 대가를 우리가 먼저 치를지 모를 일이다. 방역 성공에 안주할 게 아니라 이 기회에 다가올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 이 토론회를 주최한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토론장을 찾은 이낙연 전 총리 등 여권 주요 인사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고민할지 두고 볼 일이다.

박기용 사회정책부 기후변화팀장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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