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범ㅣ 워싱턴 특파원
미국에서 마스크 논란에 바람 잘 날이 없다. 미국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10만명이 넘는 역사적 대재앙을 마주하고 있지만, 엉뚱하게도 거의 매일 끊이지 않는 논쟁거리는 ‘트럼프가 또 마스크를 안 썼다’는 것이다.
마스크는 코로나19 사태 악화 속에 미국인들의 거부감을 이겨내고 일상 속에 함께 자리 잡은 물건이다. 3월까지만 해도 마스크 쓰고 다니는 미국인들을 주변에서 보기 어려웠지만, 4월 초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얼굴 가리개 착용을 공식 권고한 뒤부터 상점은 물론 산책로에서도 손수건을 얼굴에 두르거나 마스크를 쓴 이들이 확 늘었다. 물론, 지금은 마스크 안 쓰고는 식료품점에도 못 들어간다. 한동안 품귀 현상이 벌어져 1개당 7~8달러(9천~1만1천원)를 주고 알음알음 샀는데, 요즘엔 덴털마스크이긴 하지만 아마존에서도 개당 1달러 아래로 살 수 있다. 코로나19 정점을 지나면서 마스크도 널리널리 퍼져가는 셈이다.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바이러스 감염으로부터 나와 남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감염 방지 효과가 상당하다는 점을 보건전문가들이 인정하고 있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장은 거기에 더해 “마스크가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이 되길 바라기 때문에 쓴다”고 말했다. 어려운 시기에 필요한 방역 조처를 각자의 위치에서, 다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상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수의 미국인이 개인의 자유 침해라는 생각과 불편함, 혐오감을 참고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이 간단한 문제를 트럼프는 아주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의 태도 때문에 마스크가 정치화됐다. 정부가 얼굴 가리개 착용을 권고하던 날부터 “나는 안 쓸 거 같다”고 한 뒤, 트럼프는 그 약속을 고집스럽게 실천하고 있다. 딱 한 번 애리조나의 공장 한켠에서 썼던 순간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된 것 빼고는 어느 공개된 장소에서든 보란 듯이 ‘노마스크’다. 그는 대선 경쟁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마스크 쓴 모습을 비아냥대는 다른 이의 트위트를 리트위트했다. 트럼프에게 마스크 착용은 바이러스에 약해 보이는 것이고, 경제 정상화 기조와 상충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마스크를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로 언급했다. 그는 지난 26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마스크를 쓰고 질문하는 기자에게 “그것 좀 벗을 수 있냐. 안 들린다”며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싶은 거구나”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때 워싱턴 제도정치권의 ‘정치적 올바름’ 반대편을 자처하고 미국인들 내심의 반이민 정서 등을 대변하며 대통령에 올랐다. 그에게는 마스크 또한 거추장스러운 위선일 뿐이다.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보건당국과 이를 극구 거부하는 트럼프의 메시지 충돌은 방역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미국을 두 개로 쪼개고 있다. 보건정책연구기관인 카이저가족재단이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의 89%가 외출 시 마스크를 쓴다고 한 반면, 공화당 지지층은 58%만 쓴다고 답했다. 트럼프로부터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은 극우 방송인 러시 림보는 “마스크가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와 망설임을 조장하기 위한 좌파의 상징이 됐다”고 했다. 공화당 안에서조차 “이건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의 문제가 아니다”(마이크 드와인 오하이오 주지사)라는 호소가 나오지만 트럼프와 그 추종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경고하는 코로나19 ‘세컨드 웨이브’(2차 확산)를 11월 대선 코앞에서 맞닥뜨려야 화들짝 마스크를 집어들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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