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건 l 소설가·영화감독
“극장이라는 공간이 참 재미있지. 결국 우리는 스크린에 쏘아진 빛을 보기 위해 일부러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거 아닌가.” 영화를 보러 매일 극장에 방문하는 일이 삶을 지탱하고 있는 고태경씨의 말이다. 50대 중년임에도 여전히 영화감독 지망생이기도 한 고태경씨는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이다. 지난해 극장에 대한 애정을 담은 소설 <GV 빌런 고태경>을 쓸 때만 해도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극장가가 이런 시련을 맞게 될 줄 전혀 몰랐다. 어느 누가 알았겠는가. 책이 출간될 즈음에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고, 객석이 가득 찬 극장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소설 속 내용은 마치 잃어버린 풍경에 대한 추억을 기술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5월초 독립예술영화관을 응원하는 ‘세이브 아워 시네마’ 캠페인이 벌어졌을 때만 해도 극장들이 정말 힘들겠구나, 하고 걱정했지만 당장 문을 닫는다는 극장은 없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장기화로 이제 극장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씨지브이(CGV)는 상영관의 30%를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얼마 전에는 홍대에 위치한 상상마당 시네마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상상마당 시네마가 없는 홍대라니, 독립예술영화관 하나 없는 홍대라니. 온라인에서는 상상마당 시네마를 사랑하는 관객들이 ‘#상상마당시네마를지켜주세요’라는 해시태그로 저마다 관람한 티켓 사진을 올리며 추억을 쏟아냈다.
내게는 상상마당 시네마와의 추억이 많다. 9년 전 겨울, 영화 동아리 친구들과 <파수꾼>을 보고 나온 뒤 눈시울이 붉어진 채 하얀 입김을 내뿜던 게 첫 기억이고, 전날 거의 잠을 못 자고 일어나 <더 랍스터>를 조조 상영으로 보다가 졸기도 했다. 엄마와 함께 <러덜리스>를 보고 모처럼 홍대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연말 느낌 물씬 나는 씨네 아이콘 배우기획전에서 <레토>를 보고 유태오 배우의 팬이 되었던 날은 친구와 텐동을 먹으면서 ‘맛이 변했네’ 했다. 상상마당의 지하 4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늘 어떤 영화를 만나게 될까 기대감에 부풀었다. 모두 개인의 추억이지만 극장에 가고, 사람을 만나고, 음식을 먹고, 홍대를 누비고 다닌 수많은 관객들-공동체의 체험이기도 하다. 넷플릭스와 같은 인터넷 영상서비스(OTT)로 편리하게 영화를 보는 시대이지만 극장이라는 공간에 ‘영화를 보러 가는 일’은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잡지가 폐간 소식을 알리면서 에스앤에스(SNS)에서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 풍경을 보고 잡지사에 일하는 친구는 “사서 읽지도 않던 사람들이 사라진다고 하니까 말로만 안타까워한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당사자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였고, 나는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부끄러운 기분으로 이 글을 쓴다. 단지 상상마당 시네마만의 일이 아니라, 이어서 다른 극장들도 하나둘 씩 버티지 못할까 두렵다. 케이티앤지(KT&G) 쪽이 재정비 차원에서의 임시 중단이라고 발표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폐관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엇보다도 그곳에서 오랜 시간 일해 온 사람들이 지켜지기를 바란다. 독립예술영화관은 코로나 이전에도 늘 어려웠다. 영화와 극장, 문화가 단순히 상품과 자본의 논리로 치환되어야 할까. 그렇게 된다면 문화적 다양성이니 하는 말들은 전부 멸종되어 버릴 것이다. 보다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정책적 지원과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극장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열려있는 공간이기에 소중하다. 앞서 말한 고태경씨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극장이 문을 닫는다면 매일 극장을 찾던 고태경씨는 정말 어디로 가야 할까? 언젠가 <레토>의 싱얼롱 상영(노래를 관객이 따라부름)이 있다면 달려가서 목청을 높이겠다고 말해왔고, 그때 내가 상상하던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은 상상마당 시네마였다. 그날이 꼭 오기를 바란다. #SaveOurCine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