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김소연 ㅣ 도쿄 특파원
일본에선 ‘스가 블랙리스트’로 불리는 일본학술회의 회원 6명의 임명을 거부한 문제를 놓고 두달째 갈등 중이다. 학술회의 쪽은 이들을 임명하라고 요구하고,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버티고 있다. 지난달 26일 시작된 임시국회에서도 계속 쟁점이 되고 있다. 의원들은 임명을 왜 거부했는지 이유라도 속시원하게 밝히라고 추궁했지만 총리는 “인사에 관한 내용이라 답변하지 않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일본학술회의는 1949년 학자들이 태평양전쟁에 동원된 것을 반성하며 “전쟁과 관련된 연구를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갖고 만들어졌다. 국비로 운영되지만 독립적인 기관으로 정부에 정책 제언 등을 한다. 연구 업적을 평가해 후보자를 추천하면 총리가 임명한다. 이번엔 스가 총리가 후보 105명 중 6명을 탈락시켜 논란이 시작됐다. 70년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6명은 어떤 학자들일까? 아시나 사다미치 교토대 대학원 교수(종교), 우노 시게키 도쿄대 교수(정치학), 오자와 류이치 지케카이의대 교수(헌법), 가토 요코 도쿄대 대학원 교수(역사학), 마쓰미야 다카아키 리쓰메이칸대 교수(형법), 오카다 마사노리 와세다대 교수(행정법). 이들은 연구 분야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든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2015년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자위대를 국외 무력분쟁에 개입할 수 있도록 법안을 개정할 때 반대했다. 학자들은 성명을 내고 집회와 기자회견 등을 열어 시민들과 함께 싸웠다. “대학은 일본이 행한 침략전쟁에 협력했다는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다시는 젊은이를 전쟁터로 보낼 수 없다.” 1만명이 넘는 학자들이 반대 서명에 참여했다. 격렬한 저항에도 법은 통과됐지만 아베 총리에겐 정치적 타격이 됐다. 또 이들은 2017년 안전보장을 이유로 일반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테러방지법 등의 제정에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오키나와 문제에 나선 교수도 있다. 일본 전체 면적의 0.6%에 불과한 오키나와에는 미군기지 등 시설의 70%가 몰려 있다.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 해안지대로 이전하려고 추진 중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환경파괴와 안전 등의 우려로 “더 이상 기지를 짓지 말라”며 맞서고 있다. 2018년 오카다 교수를 포함한 행정법 전문가 110명은 공사 과정에서 드러난 법 위반 내용을 지적하는 성명을 냈다. 미-일 합의 사항으로 한시가 급한 정부로서는 이를 비판하는 학자들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이들은 ‘학자의 이름으로’ 일본의 평화와 시민들의 자유를 지키려 했고, 외롭게 싸우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손을 잡기도 했다. 정부 정책에 수많은 학자들이 반대했는데, 이번에 6명만 거부한 것은 이른바 ‘본보기’를 보인 셈이다. 인사로 권력에 복종하게 만드는 것은 스가 총리의 오래된 스타일이다.
스가 총리는 지난 2일 국회에서 자신의 인사 철학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정치인은 선거 때 어떤 정책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당선이 된다. 그런데 관료가 반대하면 국민들과 한 약속을 지킬 수 없다. 반대하는 사람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스가 총리는 국회에서 일본학술회의 회원들이 특별 공무원임을 여러 번 강조했다. 직접 말하지 않고 있지만, 왜 6명을 거부했는지 누구나 추정이 가능하다. 스가 총리가 강조한 책임정치는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다만 학문의 자유 등 민주주의를 위협하면서 자기 뜻대로 하는 정치권력을 우리는 책임정치가 아니라 ‘독재’라고 부른다. 일본 시민사회의 비판에도 끝내 양심적인 학자들을 거부한다면, 아베 전 총리가 그랬듯 스가 총리도 뜻은 이룰지언정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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